[시론]박응격/‘실패한 정부’ 되지 않으려면

  • 입력 2001년 11월 15일 18시 18분


12일 승객 251명을 태운 미국 여객기가 뉴욕 케네디 공항에서 이륙 직후 추락하는 끔찍한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기체 결함 때문인 것으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지만 어쨌든 9·11테러에 뒤이은 이러한 사고로 세계가 또다시 전율하고 있다.

▼일반 국민의 이익부터▼

안전과 서비스라는 측면에서 보면 여객기와 승객의 관계는 정부와 국민의 관계와 비슷하다. 여객기의 고객은 승객이며, 정부의 고객은 국민이다. 여객기에는 기장을 비롯해 부조종사 승무원 기술요원 등이 있다. 정부에는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을 비롯해 각료 공무원 등이 있다. 여객기 요원들은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승객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모시기 위해 각자 맡은 바 책임을 다해야 한다. 만일 어느 요원 한 사람이라도, 자기 책임을 등한시하면 운항 중 예기치 않은 사고나 승객의 불편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또한 지상의 관제탑 요원,안전요원들도 여객기의 운항에 잠시라도 방심하면 끔찍한 사고를 예방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정부의 모든 공직자들이 국민을 위한 정책 수립과 집행과정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그 직무를 태만히 하거나 방심하면 국민 개개인에게 피해와 손실을 끼치게 될 뿐만 아니라 크게는 국가적 손실과 재난을 유발하게 된다. 그래서 주어진 임기 동안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책임 있는 정치인과 관료들은 국정 관리에 실패하지 않고 현상유지만 하려 해도 안전운항을 위해 여객기 조종사 승무원들이 쏟는 정성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국민의 기대와 달리 정부가 실패를 거듭하는가. 정부 실패의 이론적 논리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사회선택이론(social choice theory)’이다. 민주적 절차에 의해 집권한 정당과 정부라 할지라도 주요한 정책 결정 또는 예산 배분에 있어서 일반 국민의 이익보다는 집권당 또는 특정 경제·압력단체의 이익을 우선하게 될 경우 정부가 실패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불특정 다수인 국민 전체에 봉사하지 않고 권력자 관료 자신의 이익이나 특정 지역 혹은 특정 정파세력을 위해 존재한다면 실패하게 된다. 특정 집단에 의해 정부 요직이 독점되고 국가자원의 배분이 불공정하게 이뤄지면 정부는 성공할 수 없다. 정부의 실정으로 국민의 불신이 가중되면 정부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말하는 ‘정부의 실패’란 정부가 국민의 지지기반을 잃고 정치적 정당성을 상실하는 것을 말한다. 독재국가에서 정치적 정당성이 체제 유지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나 민주국가에서는 국민이 선거를 통해서 정권을 심판한다.

둘째는‘공공선택이론(publicchoice theory)’이다. 이 이론은 정부조직의 방만함, 정책 결정과정의 비효율성, 관료주의적 경직성이 정부 실패를 초래한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세계적인 석학 피터 드러커 교수는 정부의 능력과 한계에 대해 “현대 정부는 전능의 정부가 아니며, 그 능력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코끼리가 새처럼 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부는 기업처럼 경제를 알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공직자에 책임 물어야▼

매년 반복되는 대학 입시제도의 난맥상, 국민의 불만을 가중시키는 의료보험정책, 기후협약과 농업개방 문제에 대한 무신경, 교민 보호의 문제, 일본 및 중국과의 어업협상 문제 등과 관련된 일련의 정부 실패를 보면 드러커 교수의 말이 우리에게 조금도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정부 실패의 핵심은 정부 실패 자체가 아니라 다시 실패하지 않겠다는 정부 의지의 실종이다. 정부 실패를 예방하는 최선의 처방책은 위정자와 공무원 모두가 헌법상의 기본의무인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의 책임’을 신의 성실 원칙에 입각해 최선을 다해 수행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정부는 정치인과 공직자에게 엄격하게 그 책임을 묻는 확고한 법치주의의 확립이 필요하다. 정권 차원에서는 국민이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 선거를 통해 임기 동안 국정관리의 성패에 대한 책임을 준엄하게 묻는 것이다.

박응격(한양대 지방자치대학원장·행정학

본보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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