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인 북]인간은 시간의 노예일까 주인일까

  • 입력 2001년 11월 9일 18시 42분


▼'시간의 철학적 성찰' 소광희 지음/764쪽 2만8000원/문예출판사▼

니체에 의하면 인간은 ‘병든 동물’이다. 인간이 병든 동물인 이유는 인간만이 시간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현재에 몰두하기보다는 보통 이미 흘러가 버린 과거에 연연해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공포와 희망에 사로잡히며 언젠가 닥쳐올 죽음 앞에서 불안해한다. 이와 함께 인간은 현재의 순간 순간이 제공하는 생의 약동과 풍요를 놓치고 만다.

이에 비해 동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시간 속에서 사멸해 가면서도 시간을 의식하지 못한다. 동물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고 오직 현재의 순간들만이 있을 뿐이다. 동물은 자신이 순간 순간 느끼는 생의 충동에 충실하다. 동물에게 시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며 이들에게 사실상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에게만 시간이 문제가 되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인간의 의식 탄생과 함께 비로소 시간은 존재의미를 갖게 된다.

이렇게 시간의식이 오직 인간에게만 고유한 것이라면 우리는 시간의 문제를 실마리로 하여 인간과 세계의 수수께끼를 해명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신과 인간, 동물과 식물 그리고 무기물로 이루어진 세계의 구조에서 인간만이 시간의식을 갖는다는 사태의 의미는 무엇인가?

소광희 서울대 명예교수(철학)의 이 저서는 시간이야말로 이렇게 인간과 세계의 수수께끼를 해명할 수 있는 단서라는 사실에 대한 분명한 문제의식과 함께 시간이란 문제를 천착하고 있는 필생의 역저이다.

소 교수의 이 책은 시간에 대한 상식적인 견해와 과학적인 견해를 살펴보는 ‘일반 시간론’과 시간에 대한 그 동안의 철학적 견해들을 다루는 ‘철학적 시간론’으로 구성돼 있다. 일반 시간론 부분에서는 원환적 시간개념과 직선적 시간개념, 캘린더나 시계의 제작과 함께 나타나게 되는 시간개념, 그리고 태양계 안의 식물과 동물들이 갖는 시간감각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철학적 시간론에서는 시간에 대한 신화적 개념에서부터 시작하여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해 하이데거와 한국의 철학자 고형곤 선생과 선불교에 이르는 시간론을 고찰하고 있다.

소 교수는 근 40여 년에 걸쳐 시간이란 문제와 고투해 왔다. 이 책은 그 동안의 철학적 사색의 결정체다. 800쪽에 육박하는 이 책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이 책을 낳기 위해서 그가 흘린 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곧 70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오히려 더 치열해져만 가는 노교수의 학문적인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박찬국(서울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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