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근대 국민국가의 역사 빼앗기 '만들어진 고대'

  • 입력 2001년 11월 2일 18시 24분


◇ 만들어진 고대/ 이성시 지음 박경희 옮김/ 260쪽 1만5000원 삼인

독자들은 모처럼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사론(史論)집을 만났다. ‘만들어진 고대’라는 제목은 부제인 ‘근대 국민 국가의 동아시아 이야기’를 압도하는 제언을 담고 있다. 와세다대 교수인 저자는 이 책의 본문 어디에도 ‘만들어진 고대’라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책의 전편에 역사의 진실과 진리에 대한 믿음을 깨는 ‘역사가 만들어진다(invented)’는 인식을 깔고 있으며 만들어진 역사 너머를 모색하고 있다.

그는 첫째로 만들어진 고대의 구체적 모습을 제시했다. 저자는 근대 동아시아 각국의 국민국가 형성기에 역사학이 국민의식 형성이라는 국가정책과 관련해 일정한 역할을 했음을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각국의 역사 인식이 고대사에 결정적 작용을 했다고 한다. 각국 사이에 현재를 과거에 투영해 과거를 배타적으로 점유하려는 투쟁이 벌어지며, 서로 다른 국가의 이야기들이 강화되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고대의 텍스트를 현재의 컨텍스트로 끌어당기는 역사 읽기의 해체를 제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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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발해를 둘러싸고 만들어진 고대를 드러냈다. 발해사를 한국사에 자리 매김하려는 남북한의 시도는 논거가 빈약하고 충분한 실증에 바탕을 두지 않은 점을 지적한다. 저자는 발해가 독자적 민족과 국가를 형성했다고 본다. 저자는 우리를 구속하고 있는 민족 개념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상대화할 것도 제안하고 있다.

셋째, 만들어진 일국사(一國史)의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1945년 이후 일본의 고대사 연구는 객관적 사실을 추구하는 실증 연구를 본령으로 삼고 있으나, 거시적으로 보면 메이지 시대 이래 이른바 황국사관이 극복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저자는 황국사관으로 대표되는 일국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동아시아 문화권에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

넷째, 만들어진 한국 고대사의 뿌리를 밝히고 그 원천적 문제를 지적했다. 동아시아 각국의 국가 이야기는 근대 일본의 태내에서 자라났다고 한다. 한국 연구는 일본에 의해 고안됐고, 일본을 의식하며 일본 연구를 전제로 해서 형성됐다고 한다. 이는 한국사가 일본사의 그늘을 벗어나야 할 필연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은 사론집이다. 따라서 저자에게 ‘국사의 시대’에 만들어진 이야기로부터 벗어난 구체적 작업을 제시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재일한국인 2세 학자인 저자는 분명 이야기를 아끼고 절제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이나 일본 어느 한 쪽에 편향되지 않을 수 있어 분명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가 전하는 이야기만으로도 지금까지 한국사를 무겁게 짓눌러온 일본사의 그늘을 벗어나는 중요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끝으로 저자와 독자 그리고 출판사는 훌륭한 번역의 모범을 보여준 역자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이종욱(서강대 교수·한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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