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내 일자리는 어디에…(중)]캠퍼스 얼어붙은 취업시즌

  • 입력 2001년 11월 1일 18시 52분


탈출구가 없는 캄캄한 미로 속에 갇혀 있는 기분입니다.”

지난달 31일 오전 숭실대 취업 정보실에서는 만난 이 대학 경제학과 졸업반 김모씨(27)는 요즘 밤마다 실직자 신세로 벽보판 앞을 서성대는 ‘악몽’에 시달린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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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두달 동안 김씨가 입사원서를 제출한 기업은 줄잡아 30여곳.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단 두 곳의 중소기업을 제외하고는 서류전형의 ‘문턱’도 넘지 못했다. 김씨는 “학점 3.5 이상에다 토익 830점이면 적어도 5, 6곳은 합격할 줄 알았는데…”라며 말끝을 맺지 못했다.

김씨는 “40∼50 대 1의 취업경쟁률이 예사인 상황에서 적성을 고려하는 건 포기한 지 오래”라며 “‘백수’로 졸업하기보다 일단 아무 데나 들어갈 작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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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취업난으로 대학가에 어느 해보다 혹독한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인기, 비인기학과를 불문하고 취업 준비생들은 ‘바늘구멍’을 통과하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비상 걸린 대학가〓지난달 31일 오후 연세대 학생회관 3층의 취업정보실은 한 장의 지원서라도 더 구하려고 몰려든 학생들로 붐볐지만 대부분 허탕치고 발길을 돌렸다.

대기업에만 10여차례 떨어졌다는 박모씨(26·경영학과 4년)는 “이러다가 정말 영영 실업자가 되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며 한숨지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상위권 대학들의 취업준비생들은 평균 100 대 1이 넘는 경쟁률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그래도 대기업을 찾고 있다. 하지만 장기 침체의 불안이 확산되면서 ‘눈높이’를 낮추는 경우도 늘고 있다.

고민 끝에 중소기업에 지원했다는 고려대 이모씨(26·경제학과 4년)는 “주위의 만류보다 올해 취업을 못하면 장기 실업에 빠질 수 있다는 걱정이 컸다”고 말했다.

연세대 취업 정보실 관계자는 “몇 년간은 경기회복이 힘들 것이라는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직종과 기업 규모에 관계없이 ‘일단 붙고 보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나머지 대학들의 사정은 더욱 절박하다. 한국외국어대 취업정보실은 지원서 배부량이 예년보다 절반 이상 줄었다.

졸업반인 김모씨(23·영문학과 4년)는 “한 장의 원서라도 구하기 위해 과사무실이나 교수님을 찾아가지만 허탕치기 일쑤”라며 “대기업 원서 구하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했다.

경희대도 예년보다 지원서 배부량이 20% 이상 줄었다. 졸업반인 이모씨(26·경제학과 4년)는 “작년에는 대기업을 포함해 한 사람당 2, 3장의 원서가 돌아갔지만 올해는 단 1장도 얻기 힘들다”며 “현재까지 과 취업률이 예년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10∼20% 수준”이라고 말했다.

상당수의 중위권대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는 일단 들어가고 보자는 ‘묻지마 취업’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한양대 졸업반 이모씨(27·경제학과 4년)는 “올해가 거의 유일한 기회라는 ‘취업 괴담’이 퍼지면서 취업 준비생들이 반드시 붙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한 채용 정보업체가 취업 준비생 524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7% 이상이 직무나 급여에 상관없이 입사하겠다고 답변했다.

여학생과 취업 재수생들의 취업은 ‘복권 당첨’에 비유될 정도. 서울 S여대 이모씨(23·불문과)는 “토익이 900점 이상이고 학점도 높았지만 한번도 서류전형을 통과하지 못했다”며 “현재로서는 여학생들의 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더욱 참담한 지방대〓지방대의 경우 ‘취업 공황’으로 표현될 정도로 취업난이 심각하다. 수도권 기업들의 취업설명회와 지원서 공급이 끊어진 상태. 최근 몇 년간 지역경제마저 깊은 불황에 빠져 지역 업체들도 신규 채용을 거의 포기한 상황이다.

부산 G대학 교수는 “최근 입사시험에 합격했다는 학생을 본 적이 거의 없다”며 “교수들도 백방으로 쫓아다니며 부탁하지만 허사”라고 말했다.

이 대학 취업준비생 이모씨(26·경영학과 4년)는 “경영대 재학생 3000여명 중 1000명 이상이 휴학한 상태”라며 “일부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도 하지만 상당수가 사실상 취업을 포기한 채 경기회복만 바라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조선대의 경우 10월부터 취업시즌이 시작됐지만 지금까지 대기업 취업원서는 1건도 없고 은행과 중소업체에서만 20여건의 추천의뢰가 들어왔다.

조선대 취업지원실 관계자는 “지난해 순수 취업률이 43.5%였으나 올해는 8% 이상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상호·현기득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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