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내 일자리는 어디에…(하)]'문턱' 넘으려면 눈 낮추라

  • 입력 2001년 11월 2일 18시 24분



《간호사 일을 했던 전업주부 추모씨(31)는 요즘 고교에 다니는 사촌동생들을 만날 때마다 “진학 못지 않게 취업을 염두에 두라”고 말한다. 나이 드신 숙부들이 “점수에 맞는 대학을 골라야 한다”는 말을 하면 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추씨는 피나 상처를 보면 질겁하는 여린 성격이었지만 K간호학교를 선택했다. 학교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서울 J병원에 취직할 수 있었고 5년간 마음 편히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군의관인 남편을 따라 경기도 청평에서 지내고 있지만 곧 서울로 옮기면 다시 간호사로 일할 생각이다. 간호사 분야는 재취업이 쉽기 때문에 추씨는 현재 일을 하지 않고 있지만 불안해 하지 않는다. 재충전 기간으로 여기고 있을 뿐이다.》

추씨의 경우는 노동시장의 변화를 내다보고 수요가 늘 분야를 잘 선택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직종에서 앞으로 인력수요가 증가할 것인가를 미리 예상하고 대비하는 것은 ‘취업대란’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관련기사▼

- 한 여대생의 하소연 '학점 3.95' 갈 곳 없나요
- 채용 담당자들 "직종 먼저 골라야"

▽‘전통’은 가고 ‘첨단·서비스’가 뜬다〓정보화와 고령화 사회가 빠르게 진전되면서 노동인력에 대한 수요가 달라지고 있다. 단순기능과 제조업 위주에서 높은 컴퓨터 활용능력을 지닌 고숙련 인력 쪽으로 수요가 점점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부는 제조업 분야의 정보기술(IT)과 고급기술 인력 수요가 2005년 172만여명, 2010년187만여명으로 연평균 2.2%씩 늘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기술수준이 낮은 인력에 대한 수요는 2005년 157만여명, 2010년 150만여명으로 계속 줄어들 전망이다.

또 평균수명이 늘어나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주5일 근무가 도입되면 여가시간도 확대돼 보건과 안전 레저 교통 등 서비스산업도 크게 팽창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는 사회간접·기타서비스부문의 비중이 2010년에는 74%를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수요 증가는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위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 밖에 국제교류가 확대되면서 대외 무역분야에서 활동하는 인력이 늘어나는 한편 국가간 노동시장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신입보다는 경력 위주로〓대학 졸업자를 포함한 ‘청년 실업’ 문제는 97년말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본격화됐다. 대졸자는 계속 증가하는데 일자리는 줄어드는 현상이 계속됐다. 취업자는 연말에 쏟아져 나오지만 기업은 수시 채용을 선호하는 것도 구직난을 더욱 심각한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

▼지난 기사 ▼

- <上>대졸 최악 취업대란
- <中>캠퍼스 얼어붙은 취업시즌
- <下>구직 대란…취업전략 가이드

게다가 기업은 신입사원보다 당장 활용할 수 있는 경력사원을 선호한다. 20대(20∼29세) 취업비중은 97년 22.6%에서 작년에는 19.6%로 감소했다. 반면 40대(40∼49세) 비율은 같은 기간에 22.9%에서 26.2%로 늘어났다.

또 앞으로는 정규직보다는 임시 일용 파트타임 파견 재택근로 등 비정규 근로자가 늘어날 추세다. 임시일용직 근로자 비율은 99년 51.7%로 전체 근로자의 절반을 넘은 뒤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중앙고용정보관리소 박천수(朴天洙) 동향분석팀장은 “과거 30년간 기업은 만성적인 인력부족을 겪었으나 이제는 인력과잉 상태”라며 “어떤 일을 잘 할 수 있느냐가 취업 여부를 결정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변화에 맞춘 유연한 대응 절실〓전문가들은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발빠르게 맞춰나가는 게 취업 준비의 핵심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평생 직장’보다 ‘평생 직업’ 개념이 자리잡아 가고 있고 그 추세가 강화되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DBM코리아 한재용(韓載鎔) 부사장은 “전공을 선택하거나 자격증을 따기 전에 노동시장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할 것”이라며 “평생 직업인의 가능성을 최대로 키울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정보기술 전체의 인력 수요와 이에 따른 공급이 크게 늘어난다 해도 범용(汎用)이 아닌 고급인력은 여전히 부족할 것이라는 점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처음부터 수준을 높이지 말고 범용분야에서 출발해 경력을 쌓은 뒤 차츰 고급분야로 진출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전병유(田炳裕) 연구위원은 “대졸 취업희망자가 연말에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현행 대학의 2학기제를 4학기제로 바꾸거나 대졸자가 취업 즉시 일을 할 수 있도록 인턴제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진기자>lee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