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개발과 보전 사이…가봉의 열대 우림

  • 입력 2001년 10월 19일 17시 56분


오늘도 가봉의 1번 국도는 잘려나간 열대 우림 나무를 실은 트럭 때문에 몸살을 앓는다. 자연보호주의자들은 12미터 짜리 통나무를 실은 끝없는 트럭의 행렬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이 트럭의 소음은 환경문제가 얼마나 복잡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산 증거다. 영국 생태학자-동물학자인 리 화이트는 "벌목꾼들이 나쁘고 우리 환경주의자들이 좋다고 잘라 말하는 것은 쉽지만 세상 모든 일을 흑백논리로 재단할 수 없다" 고 말한다. 화이트는 적도 부근에 위치한 5000평방 킬로미터 넓이의 로프 자연보전구역에서 10여년을 보냈다. 로프 보전구역은 희귀 야생동물과 열대 우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육지 속 섬'이다.

▲"목재회사와 손잡아야 숲 보전"

화이트 같은 환경보전주의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가운데 하나인 중앙아프리카에서 '자연 보전'과 '일자리 창출' 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들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목재회사들과 손을 잡았다.

자연보전운동 진영 내부 사람들은 화이트가 하고 있는 일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일부는 노골적인 적대감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화이트는 벌목회사와 함께 일 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믿고 있다.

화이트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벌목 사업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는 또 "가봉의 열대우림 지역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이곳을 '고립 된 육지의 섬'으로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이트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벌목 회사와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 그들은 벌목 회사와 땅 교환 계약을 맺고 있으며 장기적인 벌목 계획을 짜는데 참가한다. 또 특별히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의 벌목권을 목재회사로부터 사들이기도 한다.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열대 우림

중앙아프리카의 가봉, 콩고, 콩고민주공화국(옛 자이레) 근처에 위치한 로프 보전지구의 야생동물들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야생 그대로의 상태로 남아있다. 이들은 사람을 본적도 없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소수의 과학자와 생태학자를 제외하면 이곳 로프 보전지구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의 흔적은 아주 오래된 풀무 뿐이다. 풀무는 도구를 사용할 줄 알았던 사람들이 철을 녹이는데 필요한 땔감을 얻으려고 이 숲에 들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다 허물어진 이 풀무는 60센티미터가 넘는 먼지로 덮여있다.

열대 우림에서는 빽빽하게 자란 식물들이 햇빛을 가려 대낮에도 숲 안쪽은 어두컴컴하다. 숲은 식물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야생 동물로 가득 차 있다. 고릴라, 사슴, 야생 들소, 다양한 종류의 원숭이와 새, 침팬지 그리고 알록달록한 외모를 자랑하는 커다란 비비가 이 숲에서 살고 있다. 이 곳에서 볼 수 있는 야생 고릴라 가족은 자신들의 영토에 무단 침입한 과학자들을 보면서 당황해 하지만 짐짓 무관심한 척 한다.

열대 우림의 진면목은 하늘에서 볼 수 있다. 600미터 상공에서 숲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숲은 영원히 존속할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숲을 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초창기에 호응을 얻지 못한 이유를 깨달을 수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나무 바다(수해 樹海)는 사방으로 퍼져 지평선까지 연결돼 있다. 시야를 망치는 것은 나무 사이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황토빛 임도(林道)뿐이다.

▲잘려나가는 숲

하지만 가봉의 여러 지역에서는 엄청난 넓이의 숲이 불과 몇 십년 사이에 차례로 없어지고 있다. 현재 가봉 정부는 산림 보호지역을 대부분 해제하고 목재회사에 벌채권을 부여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재회사들은 비용 때문에 숲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지 않고 숲 주변의 낮은 산에서 나무를 베어 갔다. 그러나 지금은 열대 우림의 가장 외진 곳에서도 벌채가 이뤄지고 있다. 중앙아프리카 국가들의 주된 외화 수입원인 원유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는 데다 열대 우림 지역 목재에 대한 수요가 점차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를 베어내고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길은 숲 가운데로 계속해 뻗어나가고 있다. 그 결과 인간이 발을 들여놓지 않은 구역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길은 전기톱과 불도저를 숲에 들여온다. 그리고 사람과 기계가 머물다 간 곳에는 황무지만 남는다.

▲보전과 개발 사이…힘 얻어가는 '현실론'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단 하나 '돈' 때문이다.

중앙아프리카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풍부한 자연자원을 갖고 있지만 전통적인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 나라 사람들은 서구 선진국 사람들보다 평균 25년 일찍 세상을 뜬다. 콩고는 부족간의 대립 때문에 테러와 전쟁에 시달리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 (옛 자이레) 역시 1990년대 후반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겪어야 했다. 가봉 국내 경제는 석유값 하락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 결과 이들 나라 경제담당자들은 목재산업을 육성할 수밖에 없었다. 목재산업은 고용을 창출했고 국가 경제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었다. 콩고공화국에 진출한 목재회사는 이미 1만 명의 직원을 새로 채용했다. 콩고공화국의 외화 유입은 7% 이상 늘어났다. 결국 목재산업은 콩고공화국에서 석유산업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경제 영역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목재산업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환경보전을 주장하는 사람들조차 '현실론'을 들고 나오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 야생동물 보호 관련 담당자인 마르셀 응구임비는 "경제발전이 우선이기 때문에 모든 열대 우림을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지속 가능한 발전"

한편으로 지난 7월 콩고민주공화국은 야생동물 보호협회와 독일계 목재회사인 CIB와 협의해 260 평방 킬로미터 넓이의 숲을 '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구아로고 삼각지' 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침팬지, 고릴라, 숲 코끼리가 밀집해 서식하고 있는 곳이다. 또 마호가니를 비롯, 경제적 가치가 큰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이 CIB에 벌채권을 줬다면 최소 150만 달러 이상은 받을 수 있었다. CIB의 하인리히 스톨 사장도 '구아로고 삼각지 보전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 숲의 경제적 가치는 4억 달러를 넘는다고 밝혔다. 그는 '지상에서 가장 풍부한 숲'을 포기하는 대신 '지속 가능한 개발'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목재회사 내부에서는 환경친화적인 정책이 회사 수익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기업이 환경주의자들과 손잡게 되면 '녹색 기업' 이라는 인식을 소비자에게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환경을 파괴한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없앨 수 있으며 불매운동의 표적이 되는 것도 피할 수 있다.

▲생명이 살아 있는 숲을 위해

중앙아프리카에 비해 더 많이 개발된 서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야생동물 보호구역은 농장과 밭, 마을에 둘러싸인 '고립된 섬'에 불과하다. 이런 숲에서는 다양한 동물들이 살아갈 수 없다. 게다가 마을 주민들은 사냥감과 땔감을 얻기 위해 계속해서 숲에 들어온다. 동물 보호구역에 사는 동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결국 보호구역은 생태학적으로 텅빈 공간이 돼 버렸다.

그러나 30년짜리 장기 벌채 계획에 따라 나무를 베어나가면 '완충지역'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점진적으로 나무를 베어내면 야생동물과 마을을 효과적으로 분리해 놓을 수 있다.

목재회사들과 공동으로 숲보전활동을 펼치고 있는 화이트는 "보호구역과 벌채구역 사이에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코끼리는 벌채구역 내부에서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을 것이고 철새들도 쉽게 숲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이다.

작년에 야생동물 보전협회는 목재회사가 로프 보전구역 내 650평방 킬로미터 넓이의 숲에 대한 개발권을 따내는데 적극 협력했다. 그 대가로 협회는 이미 벌채가 이뤄지고 있었던 로프 보전구역 남서쪽 가장자리 400평방 킬로미터 지역을 새로 보전구역에 편입시키는데 성공했다.

[AP=동아닷컴 박종우 기자]he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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