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러니 '퍼주고 뺨맞기' 아닌가

  • 입력 2001년 10월 12일 18시 46분


북측이 돌연 16일로 예정됐던 제4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과 태권도 시범단의 서울 방문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그 이유라며 댄 ‘남조선에 조성된 사태’라는 것이 가당치 않다. “남조선에서는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에 턱을 대고 전군과 경찰에 비상경계 태세가 내려져 예측할 수 없는 삼엄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측이 말하는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을 뜻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도무지 말이 안되는 주장이다. 우리 상식으로 보면, 전쟁으로 국제 사회에 불안 심리가 널리 퍼지고 있는 이때 오히려 남북교류에 적극 나섬으로써 북측이 바라는 대미(對美)관계 개선의 발판도 마련하고 신뢰감도 조성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아무튼 북측의 일방적인 상봉단 연기로 며칠 후면 북녘 가족을 만날 기대에 밤잠을 설치던 이산가족의 실망만 더하게 됐다. 얼마 전 80대 실향민에 이어 어제도 광복군 출신 80대 노인이 자살한 사건은 국민 마음을 한없이 무겁게 했는데, 북측의 이번 연기 발표는 민족의 염원을 배신하는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이번에 방북이 무산된 사람들 이외에도 기약없는 상봉을 기다리는 나머지 수많은 이산가족의 참담한 심정을 북측은 알아야 한다.

북측의 이번 조치는 ‘받을 건 다 받고 응당 해야 할 일은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심사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북측이 이번 발표에서 10월 중 예정된 장관급회담과 경제협력추진위원회, 금강산 당국회담은 그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힌 대목에서 그런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식량과 전력, 그리고 얼마 전 북측이 새 의제로 올린 금강산 관광 대가 2400만달러 등을 받아내기 위한 회담은 계속하면서 이산가족 문제는 앞으로 두고 두고 쓸 카드로 남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측은 이번에 대단한 악수(惡手)를 뒀음을 알아야 한다. 이번 일로 남측 여론은 북측에 대한 실망과 분노, 불신만을 더욱 키우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당장 논의 중인 대북(對北) 식량 지원에 대해서도 여론은 한결 악화될 것이다.

저렇게 상식이 통하지 않는 북측에 대해 아직도 우리 정부가 일방적으로 매달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남북 화해협력도 좋은 일이고 관대함도 좋다. 하지만 정부는 언제까지 ‘퍼주고 뺨맞기’ 식의 남북관계를 계속해야 하는가. 당장 식량 지원 문제에서부터 정부는 이산가족 문제 등에서 확실한 대가를 보장받는 쪽으로 일을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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