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휴전선 침범 왜 감췄나

  • 입력 2001년 9월 28일 18시 57분


일주일 전인 19일과 20일 연달아 북한군 병사 수십명이 동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내 군사분계선(MDL)을 침범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우리측 초소에서 경고방송을 하고 경고사격을 가해 이들을 퇴각시켰다고 하지만 군 당국은 이 사건을 곧바로 공개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이번 일을 북한군의 일상적인 수색정찰 활동 중에 발생한 단순 우발사건으로 보는 듯하다. 국방부는 또 DMZ 내 상황을 공개하는 기준으로서 피아간 교전상황이 발생했거나 DMZ 내에서 적을 발견해 사살했을 때, 북한군이 우리측 초소에 사격을 가해 왔을 때 등 세 가지 경우를 적용하고 있으며 이번 사건은 이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방부의 세 가지 기준이란 것이 하나같이 남북간에 전투상황이 벌어진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그렇다면 군 당국은 DMZ에서 초긴장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만 국민에게 알리고 웬만한 일은 덮어두겠다는 것인가. 올 6월 북한 상선이 우리측 해상 북방한계선(NLL)을 무시로 넘나들던 때 북측 동향을 시시각각 알렸던 정황과 비교해 봐도 군 당국의 이번 처사는 옳지 않다.

군 당국이 북측의 도발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과 북측의 도발 사실을 제때에 알리는 것은 별개 문제다. 군 일각에선 ‘미 테러사건 이후 국민에게 불안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변명하지만 그것 역시 국민의 의식 수준을 낮춰 보는 망발일 뿐이다. 국가안보의 마지막 보루는 국민의 협조일 터인데, 이런 일이 계속되다 보면 우리 군이 이솝우화 속의 ‘거짓말하는 양치기 소년’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일각에선 이번 사건이 시점상 제5차 남북 장관급회담에 뒤이어 발생했고, 금강산 육로관광로가 개설될 예상 지역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군 당국이 이번 사건을 은폐하려 한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10월 중에 예정된 남북대화 일정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인데, 만일 그렇다면 ‘정치에 휘둘리는 안보’를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근본적인 문제는 북측에 있다. 한편에선 대화에 나서면서 다른 한편에선 도발하고, 대남방송을 통해 오히려 우리측을 강력 비난하는가 하면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제안한 정전위 접촉까지 거부하는 북측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북측이 그런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진정한 남북화해는 요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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