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선수 죽이기

  • 입력 2001년 9월 25일 10시 49분


김상식, 김태영, 안효연, 이동국… 이 선수들의 공통점을 아는가? 첫 번째 명단에서 이미 감을 잡은 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선수들의 공통점은 모두 요즘 들어서나 이번 평가전을 통해, 혹은 그 이전부터, 더 심한 경우에는 경기에 나올 때마다 팬들에게 욕을 먹는 선수들이라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선수들 외에도 많은 선수들이 국가 대표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팬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기도 하며, 또한 드물긴 하지만 때로 운 좋게도 면죄부를 받고 리스트에서 탈퇴하여 이젠 없는 선수들도 있다.

선수들이 경기를 하다 보면 언제나 좋은 경기만을 할 수는 없다. 기본적인 자신의 기량에 더하여 그날의 컨디션이나 정신 자세, 때로는 운까지도 그날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제 아무리 지단 등의 초특급 선수라고 하더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때문에 경기를 보다 보면 열 한명의 선수들 중에 맘에 들지 않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이 꼭 나오기 마련이고, 우리 나라와 같이 아직 전력이 안정되지 않는 팀의 경우에는 그런 일이 더욱 심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기 중에 그런 플레이를 하는 선수를 보면 육두문자가 절로 튀어나오려 하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번쯤은 우리의 상황을 돌아보고 또 그 선수들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김상식과 김태영이 보여주는 허접한 한국축구의 수비실력이 어찌 그들만의 탓이랴. 아시아권을 벗어난 강팀만 만나면 항상 질질 끌다가 제대로 된 돌파 한 번이 안되어 번번히 크로싱 찬스에서 인터셉트 당하고 마는 안효연의 허접한 개인기와, 한 때 무한할 것 같던 이동국의 성장세와 공격력이 무뎌진 것이 어찌 그들만의 탓이냔 말이다. 어찌 되었건 그들의 실력이 국내 선수 중에서 일인자는 아니라 할지라도, 선수층이 얇은 우리 나라의 특성상 그나마 국대급의 실력을 보여주는 얼마 안 되는 소중한 자원 중에 한 명이 아닌가. 그것이 우리의 현주소이고 가진 자원의 전부임을 어쩌겠는가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조용히 입다물고 축구를 보자는 것은 아니다. 축구란 워낙에 열혈 기질이 다분한 종목이기 때문에, 경기 중에 어느 한 명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나 반대로 환상적인 플레이가 나오면 누구나 흥분되기 마련이고 또한 그것이 축구의 마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어이없는 플레이를 반복하는 선수라 할지라도 제발 비아냥거리지는 말자. 비판이 아닌 선수 개인에 대한 비난으로 가지는 말자는 것이다. 물론 집에서 가족들과 혹은 친구들과 경기를 보는 상황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경기 내내 육두문자로 그 선수의 18대 조상까지 싸잡아 욕을 하건, 인상이 범죄형이네 어쩌네 까지 들먹이건, 끝내 치밀어 오르는 화를 못 이겨 보던 TV를 뽀개건 말건 상관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선수 개인에 대한 원초적인 불만과 비난을 혼자만의 읊조림이 아닌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는 각종 커뮤니티 공간 등으로까지 끌고 나오지는 말자. 그런 식의 비난을 사람들 사이에서 공론화시킴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해당 선수들이 대부분 20대 초중반의 어린 나이임을 감안한다면 그들에게는 상처만을 줄뿐이며 팬들에게는 또 하나의 선수를 보는 편견을 낳을 뿐이다. 물론 꼴보기 싫을 정도로 특정 선수가 보기 싫고 제발 안 나왔으면 하는 마음도 들 수 있다. 그러나 흥분을 조금만 가라앉히고 바라보자. 나름대로 죽을 힘을 다해 뛰고도 경기 때마다 별의 별 욕을 먹어야만 하는 그들은 어느 나라 선수도 아닌 바로 우리 나라의 선수들이다. 굳이 연일 맨땅에서 구르느라 제대로 된 태클기술하나 익히지 못하는 현실에서 자라온, 덧붙여 선수층마저 얇은 우리네 현실을 들먹이지 않는다 해도 그들에게 비아냥거림이 아닌 발전적인 비판과 힘을 실어줄 이유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경기 중에 벌어지는 일부 선수들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들을 정당화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우나 고우나 어쨌거나 우리 선수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발전적인 비판으로서 그들의 발전을 이끌어주어야 할 일이지, 그저 감정만 섞인 비아냥거림으로 일관하여 상처를 남기는 것은 어린 그들의 발전을 막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 프로에서는 수비형 미들로서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하는 김상식선수가 국대 경기만 나오면 그리 주눅이 들어야 하는지, 김태영 선수의 태클이 왜 태권축구라고 욕을 먹어야만 하는지, 그래도 우리 나라 선수들 중에서 괜찮은 편이라는 안효연의 스피드와 개인기가 왜 깝죽거림으로 비아냥거림을 당해야만 하는가 말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네 현주소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자신의 자식이 못생겼다고 해서 매일 볼 때마다 구박하는 꼴이 아닌가. 그러나 어쩌겠는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 우리네 현실인 것을…

나 또한 그런 현실이 못마땅하며 경기 중에 종종 나오는 선수들의 허접 플레이에 분노하게 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스위스의 알프스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북미의 록키산맥처럼 웅장하지도 않은, 그에 비하면 왜소하기까지 한 내 나라 백두대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듯이, 비록 외국의 유명 선수들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기량으로 인해 경기를 볼 때마다 불안한 장탄식이 절로 튀어나오게 하는 그들이지만 결국 우리가 아껴주고 보듬어 주어야 할 존재들인 것을…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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