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뜨겁다/DJP 공조파기 이후2]DJ-JP-이회창 3인의 대차대조표

  • 입력 2001년 9월 4일 18시 56분


《3년반 이상이나 대북정책 실무작업을 총괄해온 임동원(林東源) 통일부장관을 둘러싼 DJP 간의 갈등이 갑작스럽게 증폭된 과정이나, 그로 인해 DJP 공조가 허망할 정도로 빠르고 간단하게 와해된 과정을 살펴보면 어딘가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다. 일각에서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마치 예정돼 있던 것처럼 순식간에 DJP가 갈라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 자민련명예총재의 ‘셈법’이 달랐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DJP 공조 와해를 바라보는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셈법 또한 다를 것이다.》

▼글 싣는 순서▼

- ① 정국 어디로
- ② DJ-JP-이회창 3인의 대차대조표
- ③ 이한동 줄다리기
- ④'李'잔류 JP대응 촉각
- ⑤당정개편 싸고 계파갈등 치달아



▼DJ '공조 깨져도 잃을 것 없다'▼

민주당 이해찬(李海瓚) 정책위의장은 4일 “JP가 압박하면 김 대통령이 손들고 말 것이라는 자민련식 계산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JP나 자민련은 DJP공조와 남북문제를 최소한 ‘등가(等價)’로 봤겠지만 김 대통령은 남북문제에 훨씬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 방문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서울 방문이 이뤄지는 9, 10월이 남북관계 및 한반도 정세에 매우 중요한 시기로 김 대통령의 관심도 온통 여기에 쏠려있는 것으로 안다. 토머스 허바드 신임 주한미국대사가 외교적 결례인데도 국가보안법 철폐에 대한 긍정적 발언을 한 것은 사실상 남북간 직접대화를 촉구한 것이며, 장쩌민 주석이 방북 전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북 직접대화를 주장한 것도 같은 메시지로 주목해야 한다.”

다른 여권 인사들도 “10월 초순이면 뭔가 큰 것이 나올 수 있을 텐데 자민련이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요청도 뿌리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대통령의 JP에 대한 경계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동교동계의 한 의원은 “김 대통령이 JP의 임 장관 자진사퇴 요구를 수용하면 정치 주도권이 JP에게 넘어가고, 그 경우 ‘할 일이 많은’ 임기 말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의 한 인사는 “올해는 예산안말고는 큰 현안이 없다. 내년은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로 국회가 비중을 갖지 못할 것”이라며 “김 대통령은 ‘DJP공조가 깨지면 잃을 게 뭔가’라고 자문했을 것이고, ‘별로 잃을 게 없다’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수(李相洙) 총무가 “자금세탁방지 관련법안이 통과됨으로써 3년간 미뤄왔던 개혁입법이 마무리됐다”고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

청와대와 민주당에서는 대통령의 향후 국정운영 중심축이 남북관계와 구조조정을 통한 경제회생, 서민생활 안정 등 세가지 정도가 될 것이며, 이것들은 DJP공조 여부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사안들로 보고 있다.

남북관계는 ‘다수여당’으로도 별 추진력을 못얻었던 사안이며, 경제와 서민 문제는 한나라당과의 마찰이 상대적으로 적은 분야여서 협상이 가능하리라는 것.

▼JP '당 결속 다져 지방선거 돌파'▼

그러나 JP의 시각은 다르다. JP가 임 장관 문제로 DJ에 정면으로 맞섰던 것은 일차적으로 그의 정치적 존립기반인 보수정체성과 직결돼 있다는 게 측근들 설명이다.

한 측근은 “JP가 대통령 인사권에 관해 자기주장을 하고 나온 것은 5·16 이후 처음”이라며 “8·15방북단 파문에 분노하는 국민 여론과 당내 여론 앞에서 JP가 침묵했다면 JP도 죽고 당도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양희(李良熙) 사무총장은 “임 장관에 대해 말들이 많으니까 바꿔주는 게 대통령을 위해서도 좋고, 나라를 위해서도 불가피하다는 JP의 진의를 청와대와 민주당이 ‘반 통일’ 운운하며 왜곡했다”며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JP가 ‘임 장관이 9, 10월은 넘길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와대측 메시지마저 외면하고, ‘당정 개편시 임 장관 정리’ 카드까지 거부한 것은 의도적인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어쨌든 JP는 이번 파동을 통해 충청권에서의 지지율 하락으로 위기감에 시달려온 자민련 의원들의 결속력을 다져 내년 지방선거를 돌파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한나라당과의 협력을 통해 교섭단체 지위 재확보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회창 '대세론' 확산 반사이익▼

이 총재는 해임안 가결 뒤에도 무거운 표정을 지우지 않고 있다. 한 측근은 “이제부터 잘못하면 우리가 덤터기를 쓸 수도 있다는 걸 이 총재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공동여당에 맞서는 야당의 위치에서 이제는 명실상부한 원내 제1당으로 부상하면서 책임도 그만큼 커진데 대해 이 총재 스스로 중압감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래서인지 이 총재는 4일 주요당직자회의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정상적인 국정운영과 민생 경제 회복을 위해 국정감사에 총력을 기울이라”며 “일련의 정국상황에 정략적 정치적으로 말려들지 말라”고 당부했다.

한 당직자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 총재는 대세론을 더욱 확산시킬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선 것은 틀림없지만 동시에 신(新)여소야대라는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고 말했다.

<문철·박성원·김정훈기자>full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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