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광현/뒤로 밑지는 이유

  • 입력 2001년 9월 3일 18시 30분


전반적으로 한국 경제의 앞이 좀처럼 보이지 않지만 한국의 조선업은 요즘 ‘아주 잘 나가는’ 부문이다. 선박건조량은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다. 조선업체들은 3년 이상 작업물량이 쌓여 있어 공장마다 불을 밝혀 일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체 가운데도 선두주자인 현대중공업. 당연히 큰 호황을 누리면서 활기찬 분위기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막상 내부 사정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현대중공업의 올 상반기 매출은 3조5270억원, 벌어들인 영업이익은 3108억원이었다. 남부럽지 않은 ‘성적표’였다. 하지만 최종 성적표인 순이익은 531억원의 적자를 보였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의 괴리를 불러온 핵심 이유는 부실기업 지분 때문이었다.

현대중공업은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하이닉스반도체 지분을 7.01%,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중인 현대석유화학 지분을 49.87% 보유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사업에서 큰 손실을 본 현대아산의 지분 19.84%를 지닌 주주이기도 하다.

이들 관련회사들의 주식값이 폭락하는 바람에 현대중공업의 보유주식 평가손이 엄청났던 것. 이러니 조선업이 사상 최대의 호황이고 현대중공업이 장사를 잘 했지만 순손실의 아픔을 맛보게 됐다.

한 때 ‘현대’라는 같은 배를 탔다가 계열분리로 독립한 현대자동차가 올 상반기에 1조원대의 영업이익에 6105억원의 대규모 흑자로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물론 현대중공업이 지금 겪는 어려움의 책임을 모두 회사측에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 수십년간 내려온 ‘현대호(號)’라는 선단식 경영체제에서 개별기업 위주로 바뀌어 가는 과정에서 일정기간 감내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진통의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현대중공업의 고민을 지켜보면서 우리 기업들이 앞으로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광현<경제부>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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