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日서 꽃핀 조선 막사발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

  • 입력 2001년 8월 31일 18시 27분


◇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 정동주 지음/ 275쪽 1만5000원 한길아트

막사발이란 사발에 접두사 ‘막’이 붙은 생활 잡기(雜器)들의 통칭인데, 그것의 일생은 다음과 같다. 번듯했을 때는 밥그릇으로 대접받다가 이가 빠지면 토방 끝의 개밥그릇으로 내려앉고, 더 깨어지면 울타리 밖으로 내쫓기어 사금파리로 조각났다가 흙 속에 묻히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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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막사발 모양을 한 조선의 모든 그릇들이 그처럼 ‘막’ 사용되었던 것일까? 깨지고 나면 길바닥에 개똥처럼 뒹구는 잡기에 불과했던 것일까?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16세기 중반 경상도 남쪽 해안지방에서 만들어진 막사발 꼴을 한 수수께끼의 그릇들 만큼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일본 차인(茶人)들도 그 사발에 관해서는 이도차완(井戶茶碗)이라 부르며 대명물(大名物)로 추앙하고 있는데, 일본의 세계적인 동양미술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悰烈)는 ‘천하의 명기(名器)’라며 헌사를 아끼지 않았다.

‘범범(凡凡)하고 파란(波蘭)이 없는 것, 꾸밈이 없는 것, 사심(邪心)이 없는 것, 솔직한 것, 자연스러운 것, 뽐내지 않는 것, 그것이 어여쁘지 않고 무엇이 어여쁠까.’

저자는 재현이 불가능한 이도차완의 수수께끼를 기행문으로 풀어 가고 있다. 조선에서 14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 탄생한 그것을 언제,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지, 왜 일본으로 건너갔는지 신비에 쌓인 이도차완의 진실을 경남 일대와 일본 현지 답사를 통해 추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도차완이 16세기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유출된 배경을 저자는 정치적인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일본 장수인 오다 노부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차회(茶會)에서 이도차완을 이용하여 상명하복의 충성심을 키우기도 하고 권력의 상징으로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저자의 탐사는 ‘이도(井戶)’라는 명칭에서부터 집요하다. 일본의 학설들을 반박하며 새미골이란 지명으로 불리는 곳의 가마에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이도라는 이름이 명명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경남 사천시 사남면 일대가 이도차완의 원적지라고 추정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점은 이도차완이 서민용 밥그릇이라는 야나기의 주장을 반박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종교적인 경지까지 승화된 이도차완의 격조로 보아 사기장과 승려들이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원래 용도는 승려들의 밥그릇인 발우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이도차완의 밑부분 원형은 만다라를 형상화한 것이며, 굽 밖의 오돌토돌한 매화피(梅花皮)는 석가모니불 당시 발우를 놓을 때 그 자리에 종교적 의례로 물을 뿌렸듯 물방울을 형상화한 상징이라고 하는데, 저자의 놀라운 직관이자 상상력의 소산으로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하는 드라마틱한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역사 왜곡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날이 갈수록 드높아지는 요즘이다. 그러나 이도차완처럼 우리 스스로 망각한 역사는 없었는지 자성의 목소리도 커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조선 막사발의 진면을 복권시켜준 이 책이 그런 계기를 만들어줄 것으로 확신하며 교토시 대덕사(大德寺) 고봉암(孤蓬庵)에 보관된 이도차완 앞에서 큰절을 두 번이나 올렸다는 저자에게 무언가 빚을 진 느낌이다. 이도차완에 대한 나의 무지 때문이다. 정 찬 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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