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도 거든 '하이닉스' 위기

  • 입력 2001년 8월 29일 18시 40분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 졸업’ 자축행사를 가진 지 일주일도 안돼 경제가 또 한번 고비를 맞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의 운명이 경각에 서게 된 것이다. 이 회사가 28일 부채상환을 위한 회사채 신규발행을 잠정중단하겠다고 밝힌 것은 사실상 스스로 빚을 갚을 수 없음을 선언한 것으로 사태진척 여하에 따라 심각한 결과를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채권금융기관들이 내일 이 회사에 대한 자금지원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채권단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최악의 상황을 면키 어렵다는 점에서 걱정이 크다. 설혹 채권단이 정부눈치 때문에 이번에 추가지원을 한다고 해도 이 회사의 장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벌써부터 미국정부는 하이닉스에 대한 특별대우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통상이슈화하고 있어 어려움은 안팎으로 그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하이닉스반도체 문제가 우리경제의 가장 위험한 암초 가운데 하나로 등장한 단기적 이유는 부채덩어리가 워낙 큰 데다 세계적인 반도체경기 하락으로 대규모 손실이 지속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국민 모두가 마음졸이며 지켜보아야 하는 상황이 기본적으로 정부의 정책오류에서 시작됐다는 것은 분통터지는 일이다.

돌이켜보건대 99년 정부가 이른바 빅딜이라는 이름아래 강제적으로 LG전자와 현대그룹의 반도체사업을 통합할 때 이미 오늘날의 사태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외부평가를 거친 결론이라고는 하지만 당시 자금여력이 월등한 LG를 제쳐두고 현대에 사업권을 넘겨준 것은 큰 화근이었다. 반대의 선택을 했을 경우 반도체문제가 이처럼 국가적 걱정거리로 등장했을까.

그 후에도 정부는 하이닉스반도체의 붕괴에 따른 엄청난 파괴력을 걱정해 때마다 변칙적 지원을 금융권에 요구하면서 상황악화를 거들었다. 이 같은 무원칙한 대응은 결국 다른 분야의 구조조정에까지 악영향을 미쳤고 국내 금융기관들의 대외신인도를 도매금으로 추락시키는 요인이 됐다는 점에서 정부의 책임은 작지 않다.

하이닉스반도체 문제는 지금이라도 시장원리에 의해 처리되어야 한다. 원칙을 지킨 고통은 순간이지만 무원칙의 혼란은 국가경제 전체에 오랫동안 부담을 줄 것이다. 채권단은 세계 반도체시장의 동향과 하이닉스반도체의 미래가치, 그리고 금융기관의 지원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자율적으로 신중한 판단을 내리기 바란다. 여기서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 국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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