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원재/정책대안 제시 해본들…

  • 입력 2001년 8월 27일 19시 26분


민간 전문가가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면 관료들은 “대안은 내놓지 못하면서 무책임하게 비판만 한다”고 반박한다. 경제현안을 놓고 정부와 재계의 논리가 맞설 때마다 기업들은 ‘현실적인 대안이 있느냐’는 정부의 윽박지름에 냉가슴을 앓는다.

관료들의 충고를 듣고 반성해서일까. 이달 들어 전국경제인연합회는 30대그룹 지정제도와 집단소송제 등 기업규제에 대해 정책 개선안을 내놓았다.

“글로벌경제 체제에서 30대그룹을 별도 관리하는 것이 무의미해졌지만 굳이 대기업의 건전성을 점검해야 마음이 놓인다면 60대 주채무계열제를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기업들이 투자위축의 주범으로 꼽는 출자총액제한제의 경우 ‘당장 없애기가 어렵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아 출자 비율을 순자산의 25%에서 50%로 올려달라고 건의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폐지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목청을 높인 것에 비하면 싱겁게까지 느껴지는 태도 변화다. 전경련 김석중(金奭中) 상무는 “이 제도들이 없어져야 한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지만 정부의 현실적인 고충을 두루 감안해 절충안을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심리를 부추겨 경제를 살리려면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는 데는 정부도 동의한다. 하지만 기업들이 수출 감소와 수익 악화로 조바심을 내도 해당부처는 “곧 대책이 나올 것”이라는 ‘립 서비스’ 외에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재정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이견을 해소하지 못해 진척이 없다는 얘기만 흘러나올 뿐이다. 부처간 합의가 안 되면 아예 장기과제로 넘길 것이라는 추측까지 나돈다.

정책을 제시할 ‘의무’가 없는 민간이 머리를 짜내 수정안을 내놓아도 정부가 꿈쩍하지 않는 이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관료들이 느끼는 ‘체감 걱정’의 정도가 현장에서 기업들이 실감하는 위기감보다는 덜 절박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규제완화 시기를 놓쳐 기업이 피해를 본 뒤 관료들은 또 어떤 논리를 내세워 책임을 면하려들지 궁금하다.

박원재<경제부>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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