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고이즈미총리 訪韓 원한다면

  • 입력 2001년 8월 27일 18시 31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10월 상하이(上海)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앞서 한국과 중국을 방문,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고이즈미 총리가 그같이 방문의사를 밝힌 속뜻은 무엇일까. 고이즈미 총리는 한국과 중국 국민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왜곡된 일본의 역사교과서를 승인했고 야스쿠니(靖國)신사도 참배했다. 그 결과 국내 정치적 기반이 어느 정도 확고해진 상태다. 이제 남은 문제는 그 때문에 악화된 한국 및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조속히 복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고이즈미 내각이 등장한 이후 일본의 국제적 위치, 특히 동북아에서의 위치는 크게 약화된 게 사실이다. 한일(韓日)관계는 98년 10월 양국 정상의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이전 상태로 후퇴했고 일중(日中)관계도 어느 때보다 악화되어 있다. APEC 정상회의나 11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3’ 정상회의 등 앞으로 있을 많은 국제행사에서 고이즈미 총리는 스스로 외교적 고립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일본이 현재의 외교적 고립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일본제국주의를 미화한 역사교과서를 승인하고 전범들이 묻힌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서도 한국이나 중국 국민에게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듯한 고이즈미 총리가 이제 와서 ‘미소외교’를 편들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오히려 더 큰 반감만 살 것이 분명하다. 문제의 원인부터 해결하겠다는 성의 있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일의 순서다. 그래야 신뢰의 싹이 튼다.

이번 고이즈미 총리의 대한(對韓) 대중(對中) 정상회담 얘기가 나온 과정을 봐도 그가 진정으로 그 같은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마음가짐인지 의문이 간다. 고이즈미 총리나 일본정부는 공식적으로 한국과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제의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일본 언론을 통해 한중 조기방문설을 흘리는 방법을 택했다. 두 나라의 기류를 떠보자는 속셈인 것이다. 이같이 ‘눈치’만 보는 자세로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양국관계를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 정부에 있다. 그 책임을 회피하고 ‘외교적 미소’로 어떻게 슬쩍 넘길 수는 없을까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먼저 믿을 수 있는 행동부터 보여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