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만경대 정신’이 민족정신이라니

  • 입력 2001년 8월 22일 18시 36분


엊그제 8·15 남북공동행사에 참가한 남측 대표단이 평양에서 돌아왔을 때 김포공항의 풍경은 우리 대북정책과 민간 통일운동의 난맥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일부 통일지상론자들의 행태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는지,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지난 3년여 동안 추진해온 대북정책의 성과가 고작 이것밖에 안되는지 묻고 싶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물론 정부에 있다. 정부는 방북 승인과정에서부터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인 범민련 남측본부와 한총련 관계자들이 다른 단체의 이름으로 신청한 것을 놓쳤다. 신원확인과정에 문제가 있거나 알면서도 묵인해줬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러고도 통일부와 검찰이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정부의 무책임한 일처리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임동원(林東源) 통일부장관은 사퇴를 포함해 이번 사태에 책임지는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

일부 방북자들은 돌아온 뒤에도 납득할 수 없는 행태를 보였다. 만경대 방명록 파문의 주인공인 강정구(姜禎求) 동국대 교수의 해명이 특히 해괴하다. 강 교수는 만경대 혁명열사유자녀 학원이 떠올라 ‘만경대 정신’ 운운하는 글을 남겼다고 했다. “이 학원은 민족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해온 분들의 자녀를 특별 교육시키는 학교이며, 따라서 만경대 정신은 민족정신을 세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만경대 학원은 북한 체제를 지탱해주는 핵심 세력의 양성소이며, 굶주리고 있는 일반 주민들과는 무관한 곳이다. 이렇게 보면 만경대 정신이란 김일성주의에 훨씬 더 가까운 것이지 민족정신에 연결시킬 일은 결코 아니다. 그런 만경대에서 민족정신을 유추해내고, 그것을 이른바 ‘해명’이라고 내놓는 것을 보니 놀라울 뿐이다.

범민련 소속 일부 인사들이 당국의 사전승인 없이 평양에 가서 ‘범민족 남북 해외 연석회의’에 참석했다는 얘기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만약 이들이 방북 전 북측과 사전 연락을 취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들의 행동은 실정법 위반은 물론이고 정부 및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 아닐 수 없다.

원론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통일에 관한 다양한 논의가 나오는 것은 건강한 일이다. 그러나 다양한 통일 주장에도 ‘한계’는 분명히 있어야 한다. 국체(國體)를 혼동하고 국기(國基)를 부정하는 식의 통일 논의는 오히려 통일과정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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