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피터벡/유럽의 北포용 계속될까

  • 입력 2001년 8월 22일 18시 30분


한국에서는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비판론이 늘고 있고 미국과 일본에서는 보수적인 지도자들 사이에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고 있는 이때 북한을 포용하려는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일고 있는 지역이 있다. 바로 유럽이다. 나는 일주일 동안 유럽에 머물면서 독일과 스웨덴의 정부 관료들과 학자들을 만나 얘기를 나눠본 결과 이 같은 움직임이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유럽이 발칸반도처럼 바로 이웃한 지역에 현안이 있는 상황에서 당장 시급한 안보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도 않은 북한에 왜 그토록 관심을 기울이는지 분명치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월 유럽연합(EU) 의장국 대표였던 예란 페르손 스웨덴 총리의 평양 방문은 유럽이 남북한의 화해협력 과정에 건설적인 역할을 할 의지가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독일의 경우 여러 가지 요인이 북한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많은 독일인이 아직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이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이라는 결실을 이룰 수 있게 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라는 사실을 잘 기억하고 있다. 요슈카 피셔 외무부장관은 북한 포용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녹색당 출신이다. 또 독일은 냉전시대 분단과 통일이라는 자신들의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독일은 통일 직후 폐쇄됐던 북한대사관을 다시 개설하기로 올해 초 결정했다. 수주 내에 북한에 5명의 외교관을 파견해 서방국가로는 최대 규모의 대사관을 운영할 계획이다.

스웨덴 관리들은 스웨덴이 한국과 북한, 비무장지대(DMZ) 등에 모두 사무소를 두고 있다는 데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지난해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을 위한 페르손 총리의 서울 방문 및 김 대통령과의 회담 결과 나온 ‘한반도 평화에 관한 서울선언’은 실제로 유럽 내 대북 포용 분위기를 증폭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EU 관리들은 평양 방문 이후 북한 관리들과의 정례회담 때 북한에 몇 가지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애써 왔다. EU 관리들은 무엇보다도 북한이 인권상황을 개선해야 하며 경제개혁을 이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베트남 주재 스웨덴대사를 지낸 농업경제학자인 보르예 륑그렌은 북한에 대해 ‘스웨덴식 모델’을 따르기보다 중국이나 베트남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것을 권고해 왔다.

북한이 아무리 상하이(上海) 제너럴 모터스(GM) 공장을 자주 방문한다고 해도 볼보나 사브 같은 자동차를 생산할 수는 없겠지만 농업생산 시스템을 개선할 여지는 많다는 것이다.

유럽은 또 한국과의 대화와 화해의 중요성을 북한측에 강조해왔다. 한 유럽 관리는 “(북한은) 미국에 대한 걱정을 버려도 좋을 것”이라고 필자에게 말했다. 북한이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면 미국도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뒤지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유럽의 관리들은 대북 포용정책의 성공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유럽-북한간 경제협력의 가장 큰 걸림돌은 북한이 1970년대에 빌려 아직까지 상환하지 못하고 있는 수억달러에 이르는 외채 문제이다. 이 중 상당 부분이 상환되지 않는 한 EU는 북한과 거래를 하려는 유럽 기업들에 대해 수출 신용장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또 유럽은 현재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내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독일 녹색당과 스웨덴 정부가 핵 발전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EU가 KEDO에 대한 자금지원을 늘리려 한다면 이 두 나라에서 상당한 정치적 이슈가 될 것이다.

유럽이 현재 대북 포용정책에 있어 적극적이긴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이 같은 정책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오렐 크루아상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 교수는 한반도 가 아직까지 독일에서는 우선순위가 낮은 지역이라고 강조한다.

이에 대해서는 현재 벨기에가 의장국을 맡고 있는 EU가 올해 말 평양에 경제사절단을 보낼지 여부가 어느 정도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 어떤 나라도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EU의 대북 포용 노력은 남북한 모두에 환영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EU의 이 같은 노력이 어떤 결실을 이룰 수 있을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피터 벡(워싱턴 한국경제연구원 국장)

beckdonga@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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