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다비즈가 그리워?

  • 입력 2001년 8월 13일 10시 51분


히딩크가 수 차례 입에 담은 말이다. 다비즈 같은 선수가 그립다고… 다비즈가 누구인가? 시꺼먼 선글래스를 끼고, 시꺼멓고 긴 머리카락을 줄줄이 땋아 내리고, 얼굴까지 시꺼먼 선수다. 이눔아 이거 완존히 스태미너 맨이다. 90분 내내 쉴새 없이 경기장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는 들소형 마당발이며 경기 중에 카메라에 제일 많이 잡힌다. (선글래스 때문에 많이 잡히는 것은 아니겠지?) 공격할 때는 상대 팀 페널티 에리어에 있고 수비할 때는 자기 쪽 페널티 에리어에 있다. 중원에서 공이 오갈 때는 어김 없이 이눔아를 건드려 준다. 거기다가 투지가 활활 타오르는 놈이다. 비록 플레이 메이커는 아니지만, 이눔아가 활개치고 중원을 누비는 한 상대 팀 플레이 메이커는 그날 물먹은 거나 마찬가지다. 물론 공차는 솜씨도 좋지만, 솔직히 이눔아 보다 공 잘 차는 선수는 많다. 다비즈를 다른 선수들과 가장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왕성하고 부지런한 기동력과 공수 양면에 걸쳐서 팀 공헌도가 매우 높다는 점이다. 팀의 최고 스타는 아니더라도 감독들이 가장 안아주고 싶고 쓰다듬어 주고 싶은 선수가 바로 이런 선수일 것이다.

그런데, 다비즈 같은 스타일의 선수를 떠올리면 곧바로 생각나는 것이 바로 우리 한국 선수들이다. 한국 축구가 항상 내세우는 것이 기동력과 조직력이다. 더구나 스피드가 좋은 선수들이 많고 양쪽 발을 모두 잘 쓴다고 외국인 감독들이 좋아한다. 투지나 투혼? 이딴거 우리 얼마나 강조하던가? 또한 경기장에서도 구석구석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90분 내내 탈진이 되도록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것이 기본이고 경기장에서 걷는 선수는 태만하고 무능력한 선수로 취급한다. 한마디로 다비즈 스타일의 선수가 한국 선수들의 전형적인 스타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난감하다. 한국 축구가 최대 장점으로 내세우던 것들이 오히려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주력하던 악착 같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악바리 수비는 빠르고 정교한 조직력과 개인기 앞에 무기력하고, 부지런하고 쉼 없이 움직이는 기동력은 극심한 체력 저하 문제를 일으켰다. 솔직히 한국 축구 팬으로서 자존심도 상하고 어리둥절 하기도 하다. 다른 어떤 것은 몰라도 빠르고 부지런하며 경기장 구석구석을 누비는 성실한 모습, 악착 같이 덤벼드는 투혼 만큼은 우리의 강점이었다. 맨땅에 허벅지 까지는 것 각오하면서 태클을 날리는 것이 한국 축구다. 오히려 문제가 된다면 너무 이런 부분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기술적이고 창의적인 플레이에 약점을 보이는 것이 우리의 문제였다. 우리가 알고 있던 우리의 장점이 잘못 알았던 것이었거나, 아니면 우리 팀을 진단한 히딩크의 눈이 잘못 되었던가…

과연 우리에게는 다비즈 같은 선수가 없는가? 물론 다비즈 수준의 기량을 갖춘 선수는 없을지 모른다. 일단 그것은 한국 축구의 현재 수준 문제로 접어두자. 문제는 우리 팀에서 다비즈와 같은 역할을 하는 선수, 그와 같은 플레이 스타일의 선수가 없는가 하는 점이다. 현 대표팀을 보더라도 다비즈와 같이 공수 양면에 걸쳐서 재능이 있으며 뛰어난 기동력으로 넓은 지역을 종횡무진 누비는 선수는 몇몇이 있다. 유상철도 마당발이라면 빠지지 않으며 대표팀에서도 이미 여러 포지션에서 합격점을 받은 선수이다. 어린 선수 중에는 박지성이나 이영표 같은 선수가 그런 유형의 선수이다. 새롭게 이번 유럽 원정에 합류한 이을용도 기동력과 재치를 겸비한 부지런한 선수이다. 비단 이 선수들 뿐만이 아니다. 사실 한국 선수들은 몇몇 선수들을 빼고는 기본적으로 마당발에 부지런한 스타일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그 선수가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 전술적인 비중, 팀 컬러를 결정지을 수 있을 만큼의 역할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감독은 물론 밖에서 우리 팀을 보는 사람들의 눈에 팀 전술의 중심 역할을 하는 선수로 딱 찍힐 만한 역량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언제부터인지 우리 대표팀에는 중원을 확실하게 누비는 중심 선수가 비어 있었다. 다비즈처럼 플레이 하는 선수는 있었지만 다비즈처럼 공수에 걸쳐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투혼을 대변하는 파이터는 볼 수가 없었다.

비쇼베츠가 이끌던 ’96 아틀란타 올림픽 대표 팀의 최성용은 윤정환을 위한 조연이었으며, 대표팀의 마당발 유상철은 궂은 일을 하는 마당쇠 였다. 그들이 팀 컬러의 한 축을 이루면서 주연 대접을 받는 선수였다면, 그리고 우리 팀 전술 운영의 핵심이 그들에게 있었다면 그들은 분명 “다비즈 같은 선수”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그들은 기동력과 부지런함은 보여주었지만 미드필드를 장악하는 카리스마는 보여주지 못했다. 또한 우리의 팀 컬러가 그러한 선수들을 주연급으로 써먹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른이 넘는 축구팬들은 70년대 우리 대표팀 부동의 미드필더 이영무를 기억할 것이다. 기도하는 사마귀… 그는 골을 넣은 후 기도를 올리는 골 세레모니로 더욱 유명하며 한국 최초의 프로축구팀 할렐루야의 창단 멤버이기도 하다. 후에 할렐루야가 본연의 선교 목적이 아닌 상업화 된 팀이라는 이유로 프로팀 선수이기를 포기하고 순수 선교팀 임마누엘을 창단하기도 했다. 그런 유별난 축구 선수 이영무가 다른 선수들과 확연히 다른 점은, 이영무 특유의 부지런한 기동력이었다. 수비에서 공격에서… 그는 넘치는 에너지로 그라운드를 누볐으며, “공 있는 곳에 이영무가 있다”라는 말을 듣던 선수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팀 기동력과 조직력의 핵심에 있었다. 공격수이면서 수비수였고, 부지런한 기동력을 자랑하는 한국 대표팀의 컬러를 대변하는 선수였다. 지금 이영무가 대표팀에서 그런 선수로 뛰고 있다면 “다비즈 같은 선수”라는 평가를 들었을 것 같다.

이제 지금의 우리 팀을 한 번 보자. “다비즈 같은 선수가 그립다”는 말 한마디가 주는 의미는 크다. 히딩크가 바라는 우리 대표팀의 컬러는 바로 다비즈 같은 선수로 대표되는 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부지런함과 기동력, 투혼,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조직력을 최대의 무기로 삼을 작정이며, 그러한 팀 컬러를 대변할 선수가 팀의 핵심을 이룰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의 선수 선발과 기용, 그리고 히딩크 부임 이후에 치러진 경기에서도 그런 색깔이 역력히 나타난다. 선수들에게 요구된 것은 항상 기동력과 투쟁심,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체력이었으며 그것이 곧 경기를 지배하는 수단이었다. 고종수나 이천수, 안정환, 이동국 같은 선수들에게 현혹(?)되기 보다는 이영표나 박지성 같은 선수에게 줄곧 중원의 키를 맡긴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다비즈 같은 선수… 지금의 우리 대표팀에 그러한 선수가 없을까? 아직 부족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있다. 지금으로서 히딩크는 박지성과 이영표에게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의 표지션과 함께 그런 역할을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때로는 둘 중 하나만, 때로는 둘이 함께 뛰면서 줄곧 그 포지션을 위해 시험 가동되었다. 또한 두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이 히딩크가 원하는 “다비즈 같은 선수”와 비교적 유사한 편이다.

특히 박지성의 발전과 활약은 놀랍다. 허정무가 이끌었던 2000 시드니 올림픽 팀에서도 그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으며, 히딩크 팀에 선발된 이후에도 똑 부러지는 활약을 펼쳤다. 아직 박지성의 경기 운영 능력과 카리스마가 우리 팀의 중심으로 취급될 만큼 입지를 굳히지는 못했지만, 그가 대표팀의 중앙 미드필드 한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우리가 느끼는 것이나 팀 동료들이 느끼는 것, 무엇보다도 우리와 맞서는 상대팀의 느낌은 달라질 것이다. 박지성이 다비즈 만큼의 기량을 펼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다비즈가 팀에서 차지하는 역할만큼을 우리 팀에서 해 주기를 바랄 수는 있을 것이다. 이영표 또한 특유의 기동력을 바탕으로 히딩크에게 어느 정도 합격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새롭게 합류한 이을용 또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비록 기동력을 위주로 하는 팀은 아니지만, 부천 SK에서 이을용은 바지런히 움직이면서 중원의 핵심 노릇을 톡톡히 했다. 부천의 미드필드가 무서웠던 것은 윤정환의 게임 리딩보다도, 오히려 이을용의 활발한 기동력과 세련되고 재치 있는 (결코 투박하지 않은) 중원 장악 능력이었다. 히딩크가 원하는 강인한 체력과 투쟁심을 갖추었는지는 모르지만, K-리그에서 비교적 똑 부러지는 기동력과 수준급의 기량을 갖춘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명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문제는 우리 팀이 그러한 팀 컬러를 갖추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히딩크가 원하는 것처럼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그것을 기점으로 공격과 수비를 원활하게 전개할 수 있는 경기 스타일, 그리고 그러한 스타일로 세계적인 강팀들과 맞서서 승리를 따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의 대표팀 훈련은 그러한 전력을 갖추기 위한 과정에 있다고 해석할 수 있으며, 박지성과 이영표는 그 과정에서 담금질을 받고 있는 셈이다.

아직은 박지성이나 이영표가 다비즈처럼 뛰지 못하기에, 그들 스스로가 히딩크가 원하는 대로 우리 팀이 경기를 지배하는 데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지배할 수 있는 경기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그런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고, 다른 한 편에서는 행여나 숨어 있을 지 모르는 다비즈 같은 선수를 찾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다비즈 같은 선수가 팀 전술의 근간을 이룰 수 있도록 팀을 완성시키는 것이 바로 히딩크의 역할이며, 우리가 할 일은 그러한 과정을 빠짐 없이 지켜보는 일이다.

팀의 전술과 경기 스타일은 감독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선수들의 플레이 스타일과 특징적인 기량은 그 바탕을 바꾸기가 힘들다. 다비즈 같은 선수… 히딩크가 그런 선수를 요구하는 점은 그나마 우리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비즈 대신 시도로프 같은 선수를 원했다면, 우리에게는 해법이 없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비즈 같은 선수는 우리에게 있다. 설사 지금은 없더라도 머잖아 그런 역할을 하는 선수는 가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네덜란드 같은 팀, 최소한 그런 스타일과 그에 걸맞는 경기력을 갖춘 팀이 되기를 강요하지는 말자. 다비즈 같은 선수 뿐만 아니라 시도로프, 오베르마스, 베르캄프, 클루이베르트 같은 선수들까지 가질 수는 없으니까… 다만, 우리가 다비즈 같은 선수를 가지고, 그에 어울리는 팀 스타일을 가질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에게는 우리 나름대로 해법을 찾아 줄 선수들인 황선홍, 유상철, 홍명보 같은 굵직한 선수들이 있는 만큼, 그들에게 승부의 몇 할 정도는 부담 지울 수 있을 것이다.

다비즈 같은 선수… 우리도 분명히 가질 수 있다. 이제 히딩크 아자씨, 어디 딴데 가서 그런 말 하지 말 지어다. 다비즈 같은 선수를 바란다면, 히딩크로서는 한국 팀을 맡은 것이 하나의 행운일 수 있다. 그의 표현 대로 에너지가 모두 소진될 때까지 그라운드에서 모든 것을 불사르는 선수들이 바로 그의 군대이며, 그러한 선수들이 누구보다도 환영 받는 곳이 바로 한국 축구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비즈 같은 선수를 찾기보다 ‘오버 페이스 하지 않는 다비즈’를 찾아 보심이 어떠하오리까…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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