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육정수/언제 일본에서 ‘해방’되려나

  • 입력 2001년 8월 12일 18시 27분


나는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시절 중앙청을 헐어버린 일을 아직도 납득하지 못한다. 물론 중앙청은 일제 침략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우리 민족을 36년간 억압하고 통치했던 조선총독부 청사였던 것이다. 치욕과 증오의 대상임에 분명했다.

그렇다고 중앙청을 파괴한 것이 잘한 일은 아니다. 성숙하지 못한 역사의식의 발로이고 일본에 대한 콤플렉스의 반영이라고 생각한다. 건물 하나 없애버린다고 부끄러운 역사가 지워지지는 않는다. 간단히 지워질 수 있는 것이라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많은 나라들이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중앙청을 그대로 보존해 후손들이 ‘다시는 그런 수치스러운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자’고 다짐하는 교훈의 장(場)으로 제공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또한 일본인들은 그 건물을 보고 우리에 대해 ‘통석(痛惜)의 염(念)’이상의 사죄하는 마음을 갖도록 했어야 했다.

중앙청의 파괴는 일본이 역사를 왜곡해 기술한다고 해서 마치 자신들의 잘못된 과거가 지워질 것처럼 착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모레는 56주년 광복절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질곡에서 해방된 지 이미 반세기가 훌쩍 넘은 것이다. 1945년 일본의 패전 후 3년만인 1948년 대한민국이 세워졌으니 해방은 해방이다. 그러나 그 해방은 법적, 정치적, 군사적, 물리적 해방을 의미한다. 정신적 심리적으로도 과연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는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가 불거진 후 최근 서울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자. 아사히신문 서울특파원이 전한 얘기다.

한반도 문제를 연구하는 일본의 한 대학교수는 이달 초 서울에 왔다가 황당한 일을 당했다. 그는 서울에서 유학한 적도 있어 한국말을 어느 정도 할 줄 안다. 하지만 일본인 말투는 숨길 수 없었다. 택시를 타려다가 일본인임을 알아챈 운전사에게 승차 거부를 당하고 말았다.

또 한강변의 동부이촌동에 사는 일본인 주부 몇 명이 식사를 위해 참치집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일본말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지배인이 다가와 “나가 달라”고 요구했다.

일본어학원 강사로 있는 한 일본인은 수업 중에 당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한 수강생이 “교과서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이 뭐냐”고 힐난조로 물었다. 그는 학원 동료직원에게서도 비슷한 질문을 받아야 했다.

최근 일본 니가타(新潟)현에서는 우리나라의 한 록밴드 그룹이 공연 도중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던, 태양이 떠오르는 모양의 ‘대동아기(욱일승천기)’를 찢는 일이 벌어졌다.

일본의 왜곡된 역사교과서와 총리 등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는 반드시 고쳐져야 할 문제다. 그러나 그것을 요구하는 우리들의 자세와 목소리는 이성적이어야 한다. 감정적 대응은 우리의 미성숙을 나타낼 뿐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본다.

한일 학교간, 도시간 등의 자매결연도 중단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런 때일수록 민간차원의 각종 교류를 더욱 활발하게 펴나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일본을 더 잘 알고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만큼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길은 없다.

육정수<사회부장>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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