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중앙청을 파괴한 것이 잘한 일은 아니다. 성숙하지 못한 역사의식의 발로이고 일본에 대한 콤플렉스의 반영이라고 생각한다. 건물 하나 없애버린다고 부끄러운 역사가 지워지지는 않는다. 간단히 지워질 수 있는 것이라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많은 나라들이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중앙청을 그대로 보존해 후손들이 ‘다시는 그런 수치스러운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자’고 다짐하는 교훈의 장(場)으로 제공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또한 일본인들은 그 건물을 보고 우리에 대해 ‘통석(痛惜)의 염(念)’이상의 사죄하는 마음을 갖도록 했어야 했다.
중앙청의 파괴는 일본이 역사를 왜곡해 기술한다고 해서 마치 자신들의 잘못된 과거가 지워질 것처럼 착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모레는 56주년 광복절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질곡에서 해방된 지 이미 반세기가 훌쩍 넘은 것이다. 1945년 일본의 패전 후 3년만인 1948년 대한민국이 세워졌으니 해방은 해방이다. 그러나 그 해방은 법적, 정치적, 군사적, 물리적 해방을 의미한다. 정신적 심리적으로도 과연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는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가 불거진 후 최근 서울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자. 아사히신문 서울특파원이 전한 얘기다.
한반도 문제를 연구하는 일본의 한 대학교수는 이달 초 서울에 왔다가 황당한 일을 당했다. 그는 서울에서 유학한 적도 있어 한국말을 어느 정도 할 줄 안다. 하지만 일본인 말투는 숨길 수 없었다. 택시를 타려다가 일본인임을 알아챈 운전사에게 승차 거부를 당하고 말았다.
또 한강변의 동부이촌동에 사는 일본인 주부 몇 명이 식사를 위해 참치집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일본말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지배인이 다가와 “나가 달라”고 요구했다.
일본어학원 강사로 있는 한 일본인은 수업 중에 당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한 수강생이 “교과서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이 뭐냐”고 힐난조로 물었다. 그는 학원 동료직원에게서도 비슷한 질문을 받아야 했다.
최근 일본 니가타(新潟)현에서는 우리나라의 한 록밴드 그룹이 공연 도중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던, 태양이 떠오르는 모양의 ‘대동아기(욱일승천기)’를 찢는 일이 벌어졌다.
일본의 왜곡된 역사교과서와 총리 등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는 반드시 고쳐져야 할 문제다. 그러나 그것을 요구하는 우리들의 자세와 목소리는 이성적이어야 한다. 감정적 대응은 우리의 미성숙을 나타낼 뿐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본다.
한일 학교간, 도시간 등의 자매결연도 중단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런 때일수록 민간차원의 각종 교류를 더욱 활발하게 펴나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일본을 더 잘 알고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만큼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길은 없다.
육정수<사회부장>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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