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김치를 싫어하는 아이들아'

  • 입력 2001년 8월 10일 18시 48분


맑고 정성스런 동시집 한 권을 읽었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우리는 어느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한 동안 머물다 온 느낌이 든다. 책을 펼치면 산골 분교가 보이고, 거기에 다니는 아이들, 찬주, 미선이, 승주 들의 모습이 내가 아는 여느 아이들처럼 나타난다.

책장을 넘기면 싸하게 농약냄새도 나고 아이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도 느껴진다. 그리고 조금씩 개발이란 이름으로 허물어져 가지만, 아직은 충분히 아름다운 뒷산도 보이고 생활에 지친 어른들의 모습도 보인다. 흥분하지 않고 훈계하지 않고 그냥 담담히 보인다.

그저 자신은 ‘이웃사람들의 삶을 받아쓰기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는 작가의 말이, 대상에 대한 절대적 애정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우리는 책 여기저기서 느낄 수 있다.

단지 인간은 ‘숲 하나’가 없어진다고 하지만, 그 속에 있는 ‘원추리 고라니 으아리 두메부추 싸리버섯 바위 개미떼 바람소리 물소리 겨울눈꽃 오솔길…’ 등이 사라지는 거라고, 그래서 ‘다만 이름이라도 남겨 놓아야 하지 않겠니’라는 시는 작가의 생각이 잘 나타난다.

책 전체에서 보여지는 시골은 뭉뚱그려 향수와 한가함의 대상이 아니라 그 안에 살고 있는 모든 것들이 자기 몫을 해내는 집합이다. 그래서 지현이 영실이 뿐 아니라 신발 물고 도망치는 땅개, 오래 곰삭은 김치, 재혼하는 윤미 엄마, 문식이 아버지에까지 작가의 시선은 겸손하다.

대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살아가는 이유가 있음을 쉬운 말로 ‘받아쓰기’해주면서 인간의 이기주의를 꾸짖는다.

작가의 마음은 ‘할머니의 기도’ 일 것 같다. ‘쇠고깃국을 먹을 때는/소야 미안하다/(…)/고춧대 부러지면/아이고 쯧쯧//세상일 하나하나/모든 먹을거리마다/미안하다 아이고 쯧쯧’ (할머니의 기도)

그런 마음으로 감사할 줄 모르고 누리기만 하는 도시문명에 경종을 보낸다. ‘불빛이/늘 켜 있으면/그건 빛이 아닌/또 다른 어둠 (반딧불)

동양화 같은 시에 어울리는 그림도 좋다. 특히 사람들의 얼굴에서 묻어나는 표정은 미처 시에서 다 보여주지 못한 면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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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주부·서울 강남구 수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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