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서울 재개발지역 수해위험 '아슬아슬'

  • 입력 2001년 7월 19일 18시 42분


“불안해서 가족끼리 돌아가면서 불침번이라도 서야겠어요.”

37년 만의 집중폭우가 휩쓸고 지나간 서울 등 수도권 주민들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다.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게릴라성’ 집중폭우 예보가 계속되고 있는 데다 수해의 위험을 안고 있는 지역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수해 예상지 현장을 둘러보니〓19일 오전 주택재개발 예정지구인 서울 성북구 길음동 2, 4, 5구역 일대.

이미 철거가 90% 이상 진행된 구릉성 산지에는 시뻘건 흙이 그대로 보이는 절개지가 높이 5m 이상의 ‘흙 절벽’을 이루고 있었다. 경사지 윗부분에 재개발 현장이 있고 경사지를 따라 내려오는 길 중턱부터 낡은 주택 및 재래시장이 펼쳐진 것이 이번 집중호우로 11명이 사망한 서울 관악구 신림6, 10동 일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저지대인 길음시장 입구 재개발 1지구내 주택 5가구는 이번 수해 때 부분 침수됐다. 길음시장 상인 이모씨(57)는 “이번 물난리에 시장을 가로지르는 도로에 물이 발목까지 차 올랐다”며 “재개발 현장에서 흙이 흘러 내려와 하수구가 막히면 큰 재난이 올 것 아니냐”고 흥분했다.

위험
긴급지역
종로구 평창동 구기동 일부, 관악산 주변 취락지구, 금천구 시흥동, 도봉구 도봉동 등
위험
가능지역
돈암동 등 성북구 일부 동, 강북구 우이동 일대, 구로구 오류동, 관악구 남현동, 성동구 중곡동, 용산구 후암동, 서초구 우면동, 강남구 내곡동 염곡동 등

역시 재개발 예정 지구인 신림7동 신림1구역. 1597가구 4126명이 거주하는 이 지역은 이번에는 큰 피해는 면했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관할 동사무소 직원들도 “지은 지 30년 넘은 8평 남짓의 불량 주택들이 밀집해 있어 산사태에 도미노처럼 순식간에 휩쓸려 갈 수 있다”고 걱정했다.

동사무소 직원들은 산사태 위험지역 표면을 비닐 등으로 덮어씌우고 있지만 인력이 부족하다. 지난해 12월 직원 수가 절반 정도로 줄었기 때문.

서울 성북구 정릉4동 재개발 현장도 마찬가지. 북한산 자락을 뚝 자른 절개지의 아파트 건설현장에 이어진 비탈길 양쪽에 주택과 상가들이 빼곡히 차 있었다. 주민 김말동씨(46)는 “재개발 공사를 하면서부터 비가 오면 토사가 그대로 쓸려 내려온다”며 “하수도가 막히기라도 하면 물난리는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말했다.

▽전체 현황과 관리 실태〓서울시내에서 재개발 공사를 하고 있는 곳은 82군데. 528만여㎡(163만여평)로 여의도 면적의 두 배 정도다. 그러나 공사 현장 대부분은 구릉지나 산을 깎은 절개지를 끼고 있어 폭우시 붕괴 위험을 안고 있다.

재개발 예정지구 44곳, 102만여㎡ 역시 수해에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재개발 예정지구에 살고 있는 1만7425가구 중 낡은 무허가 주택으로 방치된 것이 5135가구로 전체의 34%에 이르고 있기 때문. 이들 무허가 건물은 대부분 철근 콘트리트 구조가 아닌 내구성이 약한 골재로 지어져 대형 참사가 우려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울시립대 이수곤 교수(토목공학과)는 “개발업자들은 배수 용량 등을 산정할 때 주변 환경이나 건물과의 영향평가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시와 구청 차원에서 치수, 지반 위험도를 종합 검토한 뒤 건축을 허가해야 하는데 현재는 도면만 보고 허가를 내주고 있다”고 말했다.

▽대책은 없나〓연세대 조원철 교수(사회환경건축공학부)는 “집중호우 때 고지대의 재개발 현장보다 저지대 일반 가옥이 더 심한 피해를 본다”며 “물 유출량이 상류보다 하류에 5배 이상 모이는 만큼 재개발 지역내에 강제로 빗물을 빼내는 시설을 만들거나 저지대에 물 저장 탱크 등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 홍콩에서는 소규모 행정 권역별로 재개발 대상 지역의 지반특성과 배수(排水) 등을 충분히 검토한 뒤 개발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이수곤 교수는 93년 한국자원연구소 재직 당시 서울의 지형, 계곡, 지표 경사도 등을 종합 분석해 ‘서울 일대 재해 위험도’를 작성한 바 있다.

하지만 재해 위험지역에서의 난개발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문제는 99년 국정감사 등에서 계속 제기됐지만 아직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진한·김현진기자>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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