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이성의 힘이 새 질서 만든다 '대붕괴 신질서'

  • 입력 2001년 7월 6일 18시 51분


후쿠야마
◆ '대붕괴 신질서'/ 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옮김/ 446쪽 /1만6000원/ 한국경제신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 미국의 외교전문 계간지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역사 발전의 최종 단계로 규정한 논문 ‘역사의 종말’을 발표해 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프랜시스 후쿠야마. 현재 미국 조지 메이슨대 교수로 있는 그는 1999년 이 논문의 발표 10주년을 맞아 같은 계간지에 회고논문을 게재했다.

“지난 10년간 국제정치 및 경제 분야에서 일어난 어떤 일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가 현대사회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결론을 뒤엎지는 못한다.”

이는 자신이 10년 전 했던 주장에 대한 자신감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준 것이었다. 다만, “‘역사의 종말’의 큰 결함은 역사과정의 원동력인 과학의 발전이 무한하다는 점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역사에서 과학의 역할을 간과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가 뒤늦게 과학의 역할에 주목했다 해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역사 발전의 최종단계로 보는 그의 주장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니다. 그 주장을 받아들일 때 정말로 곤혹스러운 것은 사회주의권이 무너졌다고 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역사의 마지막 단계로 인정하기에는 현재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 현실이 너무 각박하다는 것이다. 점점 더 치열하게 경쟁하고 극단적으로 개인주의화하는 인간 사회를 바라보며 이것을 인류 역사의 최종 단계라고 인정하는 것은 인간 종족의 하나로서 정말 고통스런 일이다.

1995년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의 중요성을 지적한 ‘트러스트(Trust)’에 이어, 1999년 미국에서 발간된 ‘대붕괴 신질서(The Great Disruption)’는 이 문제에 대한 후쿠야마 교수의 고민을 담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그리고 이제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이전하며 기존의 가치관들이 붕괴돼 온 각국의 역사적 현실을 풍부한 통계수치를 들며 설명한다.

여기서 그가 주목하는 것은 ‘사회적 자본’이다. “한 사회가 공유한 가치의 집합”을 지칭하는 ‘사회적 자본’은 물적 자본이나 인적 자본과 마찬가지로 부를 생산하는 자본이라는 것이다.

그는 범죄, 가족, 신뢰라는 세 개의 범주에서 사회적 자본의 변화추이를 검토한다. 그 결과 서구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범죄와 사회혼란의 증가, 사회적 결합의 원천인 가족과 친족의 몰락, 신뢰도 감소 등을 보며 그는 이를 ‘대붕괴’라고 명명한다. 이것은 곧 사회적 자본의 감소이며 기존 사회질서의 해체를 의미한다.

후쿠야먀 교수는 “개인 선택의 자유의 극대화라는 이름 아래 규범과 지배에 대한 지속적 파괴가 이뤄지는 사회는 와해돼 갈 것이고, 공통의 목표와 과제를 완수할 수 없게 된다”며 우려를 표시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보수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자들은 모두 1600년대 초기부터 현재까지 청교도적 가치관이 지속적으로 약화돼 왔다고 주장하지만, 후쿠야마 교수의 생각은 이와 다르다. 무질서와 도덕적 혼란은 악화 일로를 걸어온 것이 아니라 일정한 주기에 따라 증가와 감소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증감의 반복을 보며 희망을 읽는다. 인간들은 언제나 ‘대붕괴’의 단계를 거쳐 ‘신질서’를 이루게 되며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이행하고 있는 지금 이미 그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이면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그의 믿음이 있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사회적 동물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본능과 행위동기로 말미암아 사회를 조직하는 도덕률을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를 대변하는 인간관으로 평가되는 토머스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설을 부정하고 “인간의 자연상태는 도덕원칙의 주관 아래 질서있게 만들어진 시민사회”라고 주장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성장해 온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힘을 건전한 시민사회의 형성에서 찾으려는 것은 후쿠야마 교수만의 시도는 아니다.

다만 그 근거를 “사회질서를 회복시키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라고 주장하며 그 본성이 사회질서를 회복해 온 역사의 증거를 찾으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깊은 확신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20세기 말 기술적으로 발달한 사회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주장과, 인간본성에 대한 믿음에 기초해 “사회적 도덕적인 영역에서 역사는 순환하며 사회질서는 몇 세대를 단위로 주기적인 부침을 거듭한다”는 주장의 결합은 그의 ‘선택’이다. 이런 그의 선택적 결합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조장하는 이기적 경쟁을 어느 정도 견제해 낼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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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기자>khc@donga.com

□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누구?

미국에 이민한 일본인 3세로 1952년 미국 시카고 출생. 1974년 코넬대를 졸업(서양고전학)하고 1981년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음.미국 국무부 정책실 차장. 워싱턴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등을 거쳐 현재 조지 메이슨대 교수.

학문적 성과에 대해서 학계 내부에서 평가가 엇갈리지만 1989년 '역사의 종말' 1995년 '트러스트'. 1999년 '대붕괴 신질서'등 발표하는 저작마다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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