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예술가와 돈

  • 입력 2001년 7월 1일 18시 40분


미술대전은 우리 미술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신진작가의 등용문이다. 이 제도는 일제강점기 조선미술대전(선전)으로 시작해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미 작고했거나 지금 이름을 날리고 있는 유명작가들 대부분이 이를 거쳐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같은 권위 못지 않게 수상자 선정에 인맥과 돈이 작용했다거나 작품을 표절했다는 시비 등 잡음도 끊이질 않았다. 이 때문에 미술대전 무용론이나 폐지론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에 또 미술대전 심사에 ‘검은 돈’이 작용했다는 시비가 일어 화단에 대한 실망감을 더해주고 있다. 경찰청은 미술대전 입상을 미끼로 금품을 받거나 지연 학연 등을 이용해 상을 받게 한 혐의로 미술 관계자 25명을 입건해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이 밝힌 수법을 보면 이들이 과연 예술가인지 시정모리배인지 모르겠다. 돈이나 백화점상품권은 물론 땅문서까지 오갔다. 스승의 작품에 자신의 낙관을 찍거나, 다른 사람의 작품을 돈을 주고 사서 출품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제자들의 입선청탁이나 심사위원간 나눠먹기는 보통이었다.

▷이러고 보면 정정당당하게 제 실력으로 상을 받은 사람들만 억울할 것 같다. 누군가는 미술대전 수상작가에게 “혹시 당신도?”하는 의문을 가질지 모른다. 또 무자격자가 수상하는 바람에 순위가 뒤로 밀리거나 아예 수상에서 제외된 작가들도 있을 것이다. 미술뿐만 아니라 모든 상이 그렇다. 거기에 비리가 작용하면 선의의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이는 그 상의 신뢰성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은 예술이 돈이 되는 시대다. 훌륭한 작가들 중에는 자신의 작품으로 돈방석에 앉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겐 예술가는 돈과는 멀다는 인식이 있고 그것이 예술가를 존경하는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상당수의 사람들 중에는 물욕과는 담을 쌓고 지내는 사람이 많다. ‘돈은 모든 일의 원동력’(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이란 말이 예술세계의 치열한 창작정신을 좀먹고 있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송영언논설위원>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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