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5억원 가짜 인감' 기가 막혀

  • 입력 2001년 6월 21일 22시 57분


“인감증명 1통이 5억4000만원?”

광주 동구청이 한 동사무소 민원창구 여직원이 떼 준 인감증명서로 인해 5억400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고 망연자실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구청측은 최근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 총연합회까지 이 사건을 ‘하위직 권익수호’차원에서 공동대응키로 해 더욱 곤혹스런 입장이다. 공무원들은 한결같이 “민원인들로 북적대는 동사무소에서 인감증명 발급신청자의 본인여부를 확인하라는 것은 창구직원에게 수사관의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동정론’에 공감하고 있다.

광주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만큼 유명한 충장로의 W중국음식점 아들 손모씨(42)가 주소지 충금동사무소에 나타난 것은 97년 9월 26일.

대만출신 화교2세인 손씨는 초라한 행색의 70대 노인을 데리고 나타나 자신의 아버지라고 속이고 사진을 바꿔 붙인 외국인등록증과 훔친 아버지 도장을 창구직원 이모씨(32·여)에게 내밀어 인감 ‘개인신고’(改印申告)를 마친 뒤 인감증명서 4통을 발급받았다. “문제의 노인이 등록증의 사진과 일치한데다 두 사람이 중국어로 유창하게 대화까지 나눠 별다른 의심이 없었다”는 것이 창구직원 이씨의 항변.

손씨는 문제의 인감증명을 비롯한 제반서류를 갖춰 보험회사인 S화재㈜에서 2차에 걸쳐 9억원을 대출받아 외국으로 달아났다. S화재는 이듬해 대출금회수가 어렵게 되자 담보로 잡힌 음식점건물을 경매신청했다. 하지만 S화재는 아버지 손씨가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가짜인감으로 근저당이 설정됐다”고 낸 소송에서 패소하자 인감발급청인 동구청을 상대로 9억원대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은 최근 “창구직원이 등록증 사진과 동사무소에 비치된 외국인등록표의 사진 대조, 무인(拇印)의 일치 여부 등을 통해 본인임을 확인해야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손해배상액은 보험사가 청구한 액수의 60%인 5억4000여만원.

창구직원 이씨는 최근 청와대에 탄원서를 내고 “이번 사건은 단순히 ‘가짜인감’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보험사 직원과의 치밀한 공모에 의한 것”이라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이씨는 “대출직후 손씨가 보험사 담당직원의 동생통장에 3억4500만원을 입금한 사실이 드러났고 98년 이에 대한 수사를 요구했는데도 판결에 이같은 사실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광주〓김권기자>goqu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