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미얀마 불교 '위파사나 수행' 현장 답사기

  • 입력 2001년 6월 14일 18시 33분


13일 미얀마 수도 양곤의 마하시 수도원. 어둠이 막 물러간 새벽 6시 자색의 가사를 걸친 스님들이 검은 옻칠을 한 바루때(스님들이 식사때 사용하는 식기)를 들고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행렬은 잠깐 사이 70여명으로 불어났다. 여운이 짧은 북소리가 4번 울리고 기도인듯한 염불소리가 잠시 수도원을 가득 메운다. 우기(雨期)여서 아침부터 비가 왔지만 모두들 맨발이다. 스님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탁발을 떠난다.

하루 한번의 탁발은 1시간반 가량 인근 동네의 가정집을 돌며 이어진다. 탁발로 모은 먹을 거리는 사시(巳時,오전 9시∼11시) 공양과 그 다음날 아침 공양에 사용된다. 오후 불식(不食)은 철저히 지켜져 낮 12시 이후로는 간단한 음료수 외에는 아무 것도 먹을 수 없다.

미얀마에서 승려들은 엘리트 계층에 속한다. 팔리어로 된 초기 불교 경전을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우는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들로, 높은 경쟁률을 뚫고 승과시험을 통과한 이들이다.

하지만 승려라면 모름지기 돈 한푼 몸에 지니지 않아도 두려워하지 않고 바루때 하나로 살아가려는 자세를 갖는 것, 거기서부터 수행자의 청정(淸淨)함이 시작된다고 믿고 있다.

마하시 수도원의 하루는 새벽 3시에 시작돼 밤 11시에 끝난다. 이 수도원은 위파사나 수행을 현대적으로 체계화해 전세계에 알린 마하시 스님(1904∼1982)이 세운 선원으로 출가자외에 재가자들도 함께 수행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재가 수행자들도 스님들과 마찬가지로 오후 불식과 묵언(默言) 등 규율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공양시간을 빼고는 앉아서 하는 수행인 좌선(坐禪)과 걸으면서 하는 수행인 경행(經行)을 반복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의 대부분이 이뤄진다.

마하시 수도원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외부의 낯선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느릿느릿 명상에 잠겨 걷고 있는 수행자들이다.

이곳에서 외국인을 지도하고 있는 아신 잘리타 스님은 “수행자는 마치 병자가 된 것처럼 천천히 걷고, 천천히 먹고, 천천히 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인 호흡부터 걷기 먹기 등의 일상적 동작을 슬로모션화해 늘 무심히 지나쳐 온 것을 새삼 관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위파사나 수행의 특징이다.

초심자는 흔히 자신의 동작을 관찰하기 위해 동작을 세분화하는 ‘라벨링(labelling·이름짓기)’라는 방편을 사용한다. 좌선시 호흡할 때는 ‘라이징(rising·배가 부름)’하며 숨을 들이쉬고 ‘폴링(falling·배가 꺼짐)하며 숨을 내쉰다.

수행이 진전돼 들숨에서 날숨으로, 혹은 날숨에서 들숨으로 바뀌는 순간이 느껴지면 ‘시팅(sitting·정지해 있음)’이라 이름 붙이는 식이다.

걸을 때는 ‘발뒤꿈치 듬’ ‘들어올림’ ‘앞으로 내밈’ ‘내려놓음’ ‘발바닥 닿음’ 등으로, 먹을 때는 ‘음식을 집음’ ‘입으로 가져옴’ ‘입을 벌림’ ‘입속에 놓음’ ‘씹음’ ‘삼킴’ 등으로 구분하는데 이러한 구분은 수행이 진전될수록 더욱 세분화되고 동작은 더욱 느려진다.

이곳에서 수행 중인 한국 출신 비구인 반야디파 스님(32)은 “나의 미세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다보면 실제 움직이는 것이 나와는 다른 무엇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며 “이런 식으로 ‘무아(無我)’를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체험해보도록 하는 것이 위파사나 수행”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위파사나를 전수하고 있는 경남 김해 다보선원으로 출가한 그는 올초 위파사나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미얀마를 찾았다.

수도원장인 우산와라 스님(81)은 수도원 창립자인 마하시 스님의 상좌다. 역시 마하시의 상좌인 찬미예, 판다타 스님 등은 분가해 마하시 수도원에 못지 않은 명성을 날리고 있는 가운데 우산와라 스님은 30년째 묵묵히 이 수도원을 지키고 있다.

지금도 매일같이 마하시 스님이 남긴 육성 녹음테이프를 듣고 있다는 우산와라 스님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위파사나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위파사나는 다양한 수행방법 중에서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짧은 길”이라고 말했다.

<양곤(미얀마)=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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