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미켈란젤로의 딸

  • 입력 2001년 5월 25일 18시 52분


미켈란젤로의 딸

휘트니 오토 장편소설

365쪽 9000원 황금가지

대 최고의 예술가로 꼽혔던 미켈란젤로(1475∼1564년). 그는 다른 조각가가 버린 대리석으로 아름다운 청년 ‘다비드상’(1504년작)을 빚어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신의 솜씨’라는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결코 작업과정은 남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혹시 그때 이를 숨어서 지켜봤던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 그 사람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미술가의 꿈을 포기하려던 소녀였다면? 작가의 상상력은 여기서 출발한다.

1500년대 이탈리아. 줄리에타는 예술가의 재능을 타고난 사춘기 소녀다. 당시는 여자는 부인이나 수녀 이외에 직업을 갖지 못했던 때. 암담한 장래를 걱정하던 그녀는 남장을 하고 미켈란젤로의 작업실을 염탐한다. 그를 흠모하던 끝에 이뤄진 짧은 입맞춤. 그것으로 그녀는 꿈을 이룰 힘을 얻는다.

1920년대 미국. 줄리에타의 후손인 로미 역시 재능을 타고난 사진작가였다. 하지만 당시도 여성 차별로 작품활동에 제약을 받았던 때였다.

두 여인의 매개고리는 대리석 조각 하나. 줄리에타가 ‘다윗상’ 작업실에서 훔쳐 간직했다가 대를 물려 전해진 것이다. 하지만 로미는 그 조각에 담긴 의미를 알지 못한다. 여행 중에 피렌체에서 만난 ‘다윗상’을 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릴 때까지.

500년을 넘어서 피어난 예술혼. 그 꿈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사랑의 힘이다. 잘 만든 멜로드라마처럼 흥미롭게 읽히는 이유가 이것이다. 베스트셀러로 영화화됐던 ‘아메리칸 퀼트’ 원작자의 노련한 솜씨다. 원제 ‘The Passion Dream Book’(1997), 홍현숙 옮김.

세상의 근원

크리스틴 오르방 장편소설

182쪽 7500원 열린책들

만주의 화풍에 반항했던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년).

사실주의의 선도자였던 그의 그림은 ‘지나친 실경(實景) 묘사에 치우친 불경스런 희화(戱畵)’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 정점에 여성의 성기를 사실적으로 그린 ‘세상의 근원(L’Origine du Monde)’(1864년작)이 있다.

과연 이 그림의 모델이 된 여성은 누구일까. 어떻게 수치심을 버리고 화가 앞에서 은밀한 곳을 공개할 수 있었을까. 작가의 의문은 여기서 출발한다.

소설은 조안나 히퍼넌이란 노년의 여인을 등장시킨다. 쿠르베와 그의 라이벌이었던 제임스 휘슬러의 모델이자 애인. 그녀의 고백록 형식을 빌어 작품의 탄생과정을 세밀하게 복원하고 있다.

음화(淫畵)와 명화(名畵)는 육안으로만 식별되지 않는 법. 조안나의 진지한 고백이란 결국 ‘세상의 근원’에 대한 작가의 옹호이다.

작품은 소재의 선정성이 아니라 동기의 진정성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쿠르베에게 여성의 성기는 젖과 꿀이 흐르는 생명의 근원지였다. 이것이 그가 “그 음부는 바로 나”라고 말한 이유다.

실제로 이 그림에 얽힌 사연이 흥미롭다. 소재의 충격성 때문에 120여년간 존재 여부와 소장자가 알려지지 않았다. 1988년 처음 공개됐을 당시 놀랍게도 소유자가 자크 라캉이었다.

세계적인 정신분석학자도 별수 없었는지 덧대기용 그림으로 가려서 보관했다고 전해진다. 원제 ‘J’Etais L’Origine du Monde’(2000년), 함유선 옮김.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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