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세정/과학과 윤리

  • 입력 2001년 5월 25일 18시 33분


얼마 전 과학기술부의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생명윤리기본법 시안을 발표한 후부터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과학기술자들은 규제가 너무 심하다고 반발하면서 이 시안대로 시행되면 앞으로 우리나라의 관련 연구가 위축되어 21세기 생명공학시대에 국가경쟁력이 뒤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반면 종교인이나 윤리학자들은 국가경쟁력보다 생명의 존엄성이 훨씬 중요하다며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번처럼 과학기술의 한 분야가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경우도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의 도구라고만 생각하고, 일반인은 몰라도 되는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이제 과학과 기술은 일상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생명복제뿐만 아니라 유전자변형 식품, 환경오염, 정보사회의 사생활 보호 등 개인생활과 가치관에 직접 영향을 주는 문제들은 이미 많이 드러났다.

▷이런 문제들은 궁극적으로 개인의 가치기준과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과학적인 정답보다는 국민적 합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생명윤리기본법을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 일어날 유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시금석이 될 수 있다. 자기 주장만 펴기보다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쌍방이 납득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점을 찾는 학습과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성공하려면 과학기술자들은 윤리와 철학에 대한 보편적 양식을 가져야 하고, 인문사회과학자들은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를 넓혀야 한다.

▷그러나 앞길이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세상이 점점 전문화되면서 자기 전공분야 이외에는 돌아보지 않는 전문가들이 많고, 대학교육도 일반 교양의 함양보다 전문지식의 전수 쪽으로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학과 기초학문의 진정한 위기는 여기에 있다. 과학과 윤리를 함께 아우르는 지식인보다는 생명의 존엄을 무시하는 과학기술자나 세상의 변화를 이해 못하는 법률가를 배출하는 ‘고급기능인 양성소’로 전락할 위험이다.

오세정 객원 논설위원(서울대 물리학부 교수)

sjoh@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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