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간인 사살 암매장" 당시 공수부대원 첫 고백

  • 입력 2001년 5월 18일 18시 29분


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진압군으로 참여했던 한 공수부대원이 매복중 민간인을 살해한 뒤 암매장했다고 ‘양심고백’을 했다.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양승규·梁承圭)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원들이 민간인을 사살해 암매장했다는 제보가 최근 들어와 기초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총을 쏜 공수부대원(44·현재 회사원)이 이 같은 사실을 밝혔고 현장에서 함께 총을 쐈던 다른 공수부대원 3명도 이를 시인했다”고 18일 발표했다.

의문사규명위는 “당시 이들 공수부대원들은 현장을 지나가던 민간인 4명(노부부와 남자 2명)을 폭도로 오인했고, 보고를 받은 중대장의 사살 명령에 따라 도망가는 이들을 향해 조준사격을 가했으며 이중 한 명이 머리에 총을 맞아 숨졌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뒤 83건의 민주화운동 관련 의문사를 조사중인 의문사위원회에 가해자가 직접 ‘양심적 제보’를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의문사규명위에 따르면 80년 5월 22일경 광주 남구 주남마을 근처 남저수지 부근에서 광주를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매복중이던 당시 7공수특전여단 ○○대대 소속 부대원 4명이 지나가던 민간인 4명에게 총격을 가했다는 것.

이 총격으로 55년생으로 알려진 남자 1명이 숨졌으며 공수부대원들은 곧바로 현장 주변에 이 남자를 암매장했다는 것이다.

당시 근처에서 밭일을 하다 이를 목격한 40대 여자(현재 62세)는 의문사규명위의 조사에서 “죽은 남자의 시신이 암매장된 곳이 시아버지 묘소 옆이라 남편과 동네사람들이 다음날 다른 곳으로 시신을 옮겼고, 3일 후 죽은 남자의 아버지와 형, 총격을 받고 도망갔던 남자 등 3명이 찾아와 시신을 수습해 갔다”고 말했다.

이 여자는 또 “이들이 죽은 남자가 광주에서 시계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고향인 전남 고흥으로 모내기하러 가다 변을 당했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는 것.

양심고백한 공수부대원도 “죽은 남자의 주민등록증을 보니 나(57년생)보다 두 살이 많았다”고 말했다는 것.

그러나 의문사규명위는 55년생으로 고향이 전남 고흥인 남자가 광주항쟁 희생자의 공식 명단에 들어있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죽은 사람의 시신을 수습해간 가족 등의 신원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의문사규명위 관계자는 “26일 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 사건을 직권으로 조사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직권조사가 결정되면 죽은 남자의 신원과 공수부대원들의 발포과정, 상급자의 개입 여부 등을 정밀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양심고백한 공수부대원은 17일 기자회견을 하려 했으나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88년 국회 광주민주화운동 청문회 당시 진압군 부대 지휘관들은 민간인을 사살해 암매장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었다.

<양기대기자>k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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