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소녀 취향의 팬시상품<첫사랑>

  • 입력 2001년 5월 11일 10시 55분


"17세의 봄은 유난히 우울하게 시작됐다. 난 실연의 상처를 겪었고 엄마의 입원 소식을 들었다"는 독백으로 시작되는 <첫사랑>은 흔한 제목만큼이나 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4월초를 배경으로 한 일본 멜로 영화답게 흐드러진 벚꽃 한줌을 스크린 위에 흩뿌리는 <첫사랑>은 예쁜 사랑을 조각하느라 쉰내 나는 삶의 본모습은 빼먹은 영화다.

영화는 소녀적인 감성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 이래저래 힘든 시기를 맞이한 소녀 사토카(다나카 레나)는 어느 날 엄마(하라다 미에코)의 입원소식을 듣는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한 후 소심한 아빠(히라타 미치루)와 딸은 갈등을 겪는다. 인스턴트 음식을 차려 먹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그들은 "엄마의 병이 언제 낫게 될까"를 걱정하는 대신 "언제 엄마가 차려주는 음식을 먹게 될까"를 궁리한다.

철부지 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그뿐이 아니다. 사토카는 죽음에 임박한 엄마의 건강을 걱정하지 않고 엄마의 첫사랑 찾아주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어느 날 꽉 잠긴 엄마의 오르골을 열어본 사토카는 그 안에서 한 통의 편지를 발견한다. 24년 전 엄마가 한 남자(사나다 히로유키)에게 "우리 다시 시작하자"며 애처롭게 써내려간 러브레터다. 하지만 엄마는 결국 그 편지를 부치지 못한다. "마을 어귀에 있는 벚꽃 나무 아래서 만나자"는 말도 전하지 못한다.

17세 소녀의 사랑을 그릴 것 같던 <첫사랑>은 결국 빛바랜 사진첩에 담긴 엄마의 첫사랑을 그리는 것으로 관객의 예측을 빗나간다. 나머지는 모두 수순대로다. 사토카는 엄마의 첫사랑을 찾아내고 잊혀진 두 연인을 만나게 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엄마의 첫사랑은 24년 전 그 모습 그대로가 아니었다. 변변한 직장도, 가족도 없는 허름한 중년. 사토카는 엄마가 품고 있는 첫사랑의 이미지를 깨지 않기 위해 그 남자를 멋진 신사로 바꿔놓는다. 새 양복을 사 입히고, 몸의 군살을 제거하기 위해 함께 조깅을 하고.

그러나 <첫사랑>은 아주 보수적인 결말로 소녀적인 감성에 흠집을 낸다. 벚꽃 나무 아래서 만나자는 그 약속을 지킨 사람은 다름 아닌 사토카의 아빠. 영화는 "첫사랑은 추억으로 남겨놓는 것이 더 아름답다"는 아주 고답적인 결론으로 첫사랑의 아릿함을 봉합한다.

<러브레터> <언두>의 프로듀서로 일했던 나가사와 마사히코가 시나리오를 쓰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음악을 담당한 바 있는 히사이시 조가 음악을 덧입힌 이 영화는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너무 예쁘게만 직조된 그 사랑엔 삶의 향기가 없다. <첫사랑>은 소녀들의 입맛에만 전적으로 기댄 서투른 팬시 상품일 뿐이다.

감독 시노하라 데츠오/주연 다나카 레나, 사나다 히로유키, 하라다 미에코, 히라타 미치루/개봉일 5월19일/러닝타임 105분/등급 15세 이용가/홈페이지 http://www.firstlove2u.co.kr

황희연<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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