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순의 대인관계 클리닉]"오냐 오냐"가 자녀 인격장애~

  • 입력 2001년 5월 1일 18시 53분


40대 초반의 주부 김선영씨는 요즘 대학에 들어간 딸 때문에 고민이 많다. 옷을 한벌 사도 꼭 값비싼 브랜드여야 하고, 유행하는 것은 뭐든지 다 가져야 한다. 처음에는 힘들게 대학에 들어가 준 것만도 대견해 원하는 것은 다 들어 주었다. 그것이 실수였다. 한도 끝도 없는 것이다.

요즘 경제사정이 안 좋아 아버지 사업도 예전만 못하다고 해도 그런 얘긴 콧등으로도 안 듣는다. 얼마 전에는 유행하는 비싼 가방을 사달라는 걸 안된다고 했더니 물건을 집어던지고 상스러운 말을 하며 난폭하게 굴었다. 아이는 한술 더 떠 “부모 노릇 제대로 못할 바에는 왜 낳았느냐. 낳았으면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니냐. 자식이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전에는 부모가 돌봐주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냐”고 했다.

“저 애가 내 딸인가 싶을 정도로 아연하고 참담한 심정이 되더군요.” 김씨의 말이다. “자식 잘못 키웠다는 걸 뼈아프게 깨달았습니다. 오직 공부 하나 잘해 주기만 바란 게 잘못이었죠. 그것 때문에 웬만한 요구는 눈 질끈 감고 다 들어주었으니까요.”

요즘 정신과적으로 ‘경계선 인격장애’ 환자가 늘었다는 임상보고가 나오고 있다. 그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원하는 것은 즉각 채워져야 하고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도 극단적이어서 자기에게 잘해주면 무조건 좋은 사람이고 어쩌다 조금만 소홀하면 급전직하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인간으로 만들곤 한다. 자신의 욕구에 따라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를 멋대로 조정하면서 만에 하나 그 기대치가 채워지지 않으면 쉽게 난폭한 행동을 할 때도 많다. 일이 잘못될 경우에는 100% 남의 탓으로 돌린다.

누구나 어릴 때는 원하는 것이 즉각적으로 만족돼야 하는 ‘쾌락원칙’을 따른다. 그러다가 성장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욕구와 현실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는 ‘현실원칙’에 눈뜨기 시작한다. 이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 자신의 욕구를 절제하고 인내하는 훈련과정이다.

어떤 이유로든 이 과정을 거치지 않을 때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쾌락원칙에만 매달리는 애어른으로 남게 된다. 그 배경에는 아이의 독립을 막으며 끝까지 손발 노릇을 해주려고 드는 부모의 비뚤어진 과보호 심리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요즘 취직시험 보는 현장에까지 부모가 따라간다는 얘기가 단지 썰렁한 난센스 유머로 끝나기만을 바란다.

양창순(신경정신과 전문의)www.mind―op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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