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읽는 책]서지문-한국의 풍속화

  • 입력 2001년 4월 20일 18시 53분


▨ 한국의 풍속화

풍속화는 우리에게 가장 친근하고 편안한 그림이어서 전문가의 안내 없이도 충분히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다고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정병모 교수(동국대·미술사)의 ‘한국의 풍속화’(한길아트·2000년)를 읽어보면 그림이 탄생한 시대의 상황과 세계관, 기법의 묘 등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 있어 풍속화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풍속화라는 용어의 해설에서 시작해 선사시대부터 한국의 종교적(주술적) 풍속화, 정치적 풍속화, 그리고 통속적인 풍속화의 용도와 기법 등을 분석하고 있다. 풍부한 도판이 곁들여진 해설은 학술적이면서도 재미있고 생생하다.

▽화폭속에 생생한 역사 담겨

종교적 풍속화라 함은 선사시대부터 바위에 새겨진 암각화와 고분벽화를 말하는데, 암각화에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풍어와 풍년을 기원하는 종교적 주술적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고구려 신라 발해의 고분벽화 역시 전통 신앙적인 영생불사의 기원, 또는 불교적인 연화화생(蓮華化生)에 대한 동경을 나타내고 있다. 조선시대의 감은탱화 역시 이런 종교적인 소망을 표현한다.

정치적인 풍속화는 구중(九重) 궁궐 속에 백성의 생활을 접하지 못하는 왕자와 왕손들에게 백성의 어려운 생활상을 그림으로 보여주어 통치자로서의 각오와 의무감을 심어줄 목적으로 왕이 그리게 한 경직도 (耕織圖)와 일반 백성의 윤리와 풍습을 바로잡기 위해서 백성에게 판화로 보급한 삼강행실도 등의 그림이 해당된다.

저자는 이 그림들의 표현기법, 공간개념, 채색, 장면 조합방식의 변화와 중국과 일본의 회화와의 영향관계를 설명해 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일상생활을 반영하는 근대적 풍속화를 설명한다. 윤두서, 조영석, 정선, 강세황 등 사대부 출신 화가들의 풍속화는 다분히 목가적인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담은 산수 인물도가 많았다.

▽작품과 관련된 일화 재미 솔솔

이에 비해 중인 출신의 화원(畵員)이었던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의 풍속화는 세정(世情)의 실태와 불평등한 신분계층에 대한 비판을 많이 담고 있고 에로틱한 소재를 과감히 사용해 긴장감과 현실감이 더하다.

이 책은 우리 문화 속의 속(俗)과 아(雅)의 대립에 대한 고찰도 담고 있고, 화가들의 생애와 개성 등 흥미진진한 내용도 풍부하게 싣고 있다. 우리에게 친숙하고 정다운 여러 풍속화―조영석의 ‘선유도’ ‘이 잡는 노승’, 김홍도의 ‘벼 타작’ ‘빨래터’ ‘서당’ ‘씨름’, 신윤복의 ‘단오놀이’ ‘밀회’ ‘달빛여인’ ‘뱃놀이’ ‘칼춤’, 그리고 김득신의 ‘대장간’ ‘파적도’ ‘양반과 상인’ 등―를 비롯한 150개의 컬러도판이 들어 있다. 이 책의 여러 작품과 관련된 일화들과 그림과 관련된 시(詩)들은 문학적 즐거움도 아울러 선사한다. <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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