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근기자의 여의도이야기]'공동투기구역 JSA'

  • 입력 2001년 4월 16일 18시 26분


지난 주말 한 독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주식을 한다는 그 독자는 대뜸 “A종목을 사려는데 괜찮겠느냐”고 물어왔다. 일단 그 종목에 대해 시장에 알려진 이야기를 나름대로 상세히 전달했다. 그리고 나서 물어봤다. 증시가 아직은 불안정하다고들 하는데 왜 굳이 투자를 하려고 하는지.

대답은 간단했다. 그 종목의 주가가 싸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사야할 것 같다는 얘기였다. 사라, 사지말라 식의 대답은 할 수 없었다. 대신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봤다.

“예전에도 주식을 하셨습니까?” “예.” “이익을 올렸습니까, 아니면 손해를 보셨나요?” “손해 봤습니다.” “그럼 혹시 그 때도 주식이 싸보여서 투자를 했는데 주가가 더 떨어져서 손해 보신건 아닌가요?” “뭐,그랬죠…”

과거의 실패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새로운 이익만을 좇는 투자자들이 적지않다. 현대증권이 운영하는 투자클리닉을 찾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런 성향의 투자자라고 한다. 돈을 벌었을 때만을 기억하고 잃었던 경험은 떠올리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

투자자들의 이런 심리와 비슷한 심리현상이 묘사된 영화가 있다. 지난해 크게 흥행했던 ‘공동경비구역 JSA’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북한군 병사를 자신이 죽였으면서도 동료가 살해를 했다고 일관되게 진술을 한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동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거짓 진술을 한게 아니었다. 친하게 지내던 북한군 병사를 자기 손으로 죽이는 순간 충격을 받은 나머지 자신도 모르는새 그 사실을 의식의 한 구석에 가둬버렸던 것이다. 그는 마지막에 이르러 총을 쏜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음을 떠올리고는 자살을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같은 현상을 ‘억압(repression)’이라고 설명한다. 감당할 수 없을만큼 충격적인 기억에 대해서는 자기 보호를 위해 그 기억이 의식에서 나오는걸 막는 현상을 가리킨다. 특정 상황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인간의 본능인 방어기제 가운데 하나다. 정도는 다르지만 ‘합리화’도 ‘억압’과 같은 종류의 방어기제에 속한다.

주식에 실패한 기억을 애써 잊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억압’이나 ‘합리화’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잃은 금액은 가급적 줄여서 기억속에 담아두고, 돈을 벌어 행복했을 때의 큰 액수는 정확하게 기억하는 심리도 마찬가지다.

투자클리닉에서는 이런 투자자들이 찾아오면 과거 투자 손익 기록을 따져가면서 실패의 경험을 최대한 상기시켜 준다고 한다. ‘주가가 오르고 있는데 빨리 사야하지 않을까’라는 식의 조급한 투자자들을 달래는데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

요 며칠 주가가 오름세를 타자 증권사 객장을 찾는 사람이 늘고있다고 한다. 주식을 사고파는건 각자의 자유지만 객장을 찾기전 적어도 한번쯤 옛날을 떠올려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억압’해둔 기억, 또는 ‘합리화’로 적당히 버무려둔 기억은 없는지.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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