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훈기자의백스테이지]'다시 부르기' 붐에 고함

  • 입력 2001년 4월 13일 15시 44분


그림: 황태훈 기자
그림: 황태훈 기자
인기 여성그룹 '핑클'이 요즘 혜은이의 노래 '당신은 모르실거야'를 리메이크해 재미를 보고 있다.

70년대 노래에 R&B 스타일을 가미하고 중간에 랩을 가미하는 등 최신 감각으로 편곡한 것이 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흘러간 노래를 다시 만들어 부르는 사례가 최근 늘어나고 있다. 기존의 노래를 약간 편곡하는 리바이벌과 함께 핑클처럼 랩 등을 추가해 재구성하는 리메이크가 언제부터인가 꼬리를 물고 있다.

조성모의 '가시나무새'(시인과 촌장), 유승준의 '어제 오늘 그리고'(조용필), '클릭 B'의 '아주 오래된 연인들'(015B), 홍경민의 '얘기할 수 없어요', 김범수의 '비처럼 음악처럼'(김현식) 등은 리바이벌 혹은 리메이크돼 히트한 노래들이다.

옛 노래 다시 부르기는 일부 인기 가수들이 부채질한 '혐의'가 짙다. 정규 앨범의 빅히트 후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중간에 리메이크 스페셜 음반을 발표함으로써 공백기를 줄이려한 것인데 뜻밖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하나의 유행이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최근 박완규가 자신의 2집 앨범에서 록 그룹 '들국화'의 보컬 전인권 씨의 노래 '사랑한 후에'를 허락 없이 샘플링해 곡을 만들었다가 피소되는 일까지 생기기도 했다.

사실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옛날 노래를 다시 부르는 것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흘러간 노래를 신구 세대가 공유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시각도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리바이벌과 리메이크의 홍수가 대중가요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음악 관계자뿐 아니라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일이다.

한 댄스 그룹 매니저는 기자에게 "인기 작곡가들의 경우 노래 한 곡에 최소 500만~1000만원을 요구해 부담이 된다"며 "대중에게 익숙한 노래를 편곡만 잘해 내놓으면 최소한 기본은 하기 때문에 예전의 히트곡을 다시 부르게 된다"고 털어 놓은 적이 있다.

이렇게 음악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옛 노래만 고쳐 부른다면 결국 팬들은 가요에 식상해질 것이고 점점 가요를 멀리할 지도 모른다.

코 앞의 이익만 보는 제작자나 작곡가들은 생각해야 한다. 안일한 기획과 고통 없는 창작행위가 가요계를 10여년 전의 암흑시대로 떨어뜨릴 수 있음을.

황태훈 <동아닷컴 기자>beetlez@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