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순의 대인관계클리닉]조기교육 노이로제

  • 입력 2001년 3월 27일 19시 08분


◇"남에게 뒤질라' 과외열풍 동참

자녀에 우울증-행동장애 유발

20대 후반의 가정주부 강민아씨. 요즘 고민이 많다. 첫아이를 유아원에 보냈는데 아이 친구 엄마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자기 아이만 빼고 다 영어를 배우러 다닌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아이들 입에서는 영어식 감탄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그런 아이들 속에서 과연 자기 딸이 제대로 적응 할 수 있을지 도저히 자신이 없다.

“뭐, 조기교육이 다 좋은 건 아니지” 라고 자위해 보지만 그런 생각으로 아이에게 영어교육 하나 제대로 시키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면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한다며 놀고 있는 남편에게로 미움의 화살이 날아간다. 머리로는 남편을 이해하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마음은 부글부글 끓을 때가 더 많으니 어찌하랴.

대인관계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강박적으로 완벽함을 추구하고 남에게 조금이라도 자신의 모자라는 면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지 못하는 자신에게 죄책감을 갖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런 노이로제 성향은 물론 타고난 기질에도 연유한다. 그러나 성장과정도 무시할 수 없다. 노이로제 경향을 강화시키는 환경이 더 문제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집단으로 노이로제를 양산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특히 아이들 교육문제에 이르러서는 더욱 그렇다. 물론 과거와 달리 한 집안에 아이가 한 명 아니면 둘이니 전력투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둘 중 한 명이 실패하면 실패율 50%이고 외동아이가 실패하면 실패율이 100% 아닌가. 어느 부모가 자식 교육에 매달리지 않으랴. 그러니 한 달에 80만, 90만원씩 한다는 영어과외를, 그것도 아이가 막 말을 배우자마자 시키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아예 과외를 시키기 위해 학교 앞에 오피스텔을 따로 얻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나 이쯤에서 한번쯤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의 앞날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빨리빨리 잘해야 한다. 물론 타고난 능력이 뛰어나 잘 따라간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강박증 환자가 되거나 우울증이나 행동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다.

결국 나의 노이로제로 인해 아이까지 노이로제환자로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사회를 총체적으로 집단 노이로제 상태로 몰고 가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양창순(신경정신과 전문의)www.mind―op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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