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덧없는 인간과 예술

  • 입력 2001년 3월 2일 19시 17분


◇덧없는 인간과 예술/앙드레 말로 지음/유복렬 옮김/320쪽, 1만5000원/푸른숲

올해는 앙드레 말로(1901∼1976)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그는 지난 세기 세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스페인 내전 참전, 알사스 로렌 지방 레지스탕스 지휘, 프랑스 초대 문화부 장관 역임 등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한 전범(典範)을 보여줬다. 그는 작가이자 문명비평가이며 정치인이자 예술평론가로서 일반적 직업의 분류법을 훌쩍 뛰어넘었다.

니체와 도스토예프스키에 정신적인 젖줄을 대고 있는 그는 ‘어린 왕자’의 생텍쥐페리, ‘구토’의 사르트르와 함께 행동하는 프랑스 지성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거칠게 말한다면 계몽시대 볼테르 이후 본격적으로 형성된 프랑스 지성의 전통이 드레퓌스 사건에 개입한 에밀 졸라를 경유해 앙드레 말로, 사르트르, 카뮈로 관류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인은 소설의 아들”이라는 시오랑의 말을 믿는다면, ‘정복자’ ‘인간조건’ ‘왕도(王道)’ 등 소설을 통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한 앙드레 말로는 전형적인 ‘유럽소설의 아들’이다.

‘유럽 소설의 아들’은 (밀란 쿤데라가 말하듯이) 질곡과 압제로서의 역사와 인간 조건이라는 숙명에 저항해, 자유와 예술창조로서의 역사 속에서 인간 행동의 가능성과 희망을 동시에 발견한다.

이 책에서 그가 일관되게 천착하는 주제의식은 죽음과 인간조건에 대항하는 예술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모든 예술은 인간이 운명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수단이다”라는 발언으로 응축된다. 말로가 바라보는 인간은 ‘덧없는 인간’(l’homme precaire)이다. 말로가 자신의 유작인 이 책에서 발견하는 인간은 덧없는 존재라기보다는 유한성과 죽음이라는 인간조건 속에서의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존재이다.

여기서 말로는 “인간을 죽이기 위해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기 때문에 위대하다”는 파스칼의 언명을 자기식으로 변형해 사용한다. “인간, 그 작은 존재가 만들어내는 그 엄청난 힘, 그것이 죽음에 저항하는 예술이다”(그러하기 때문에 인간은 위대하다)라고.

역설적으로 예술은 인간의 죽음으로 인해 생명력을 확보하며, 인간은 예술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상상의 박물관’을 지어야 한다. 앙드레 말로의 ‘상상의 박물관’에서는 미켈란젤로가 몽테뉴에게 말을 건네고, 고야와 보들레르가 대화한다. 그는 ‘상상의 박물관’ 속에서 신화서사에서 회화로, 소설에서 영화로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서로 상충하는 목소리들을 ‘다성적 화음’으로 변형시키는 탁월한 연금술을 발휘한다. 독자는 이 지점에서 이 책을 읽는 쾌락과 작가의 자유분방한 지적 유희를 만끽한다. 동시에 600여개에 이르는 역주는 독자의 인문적 교양을 비옥하게 만들 것이다.

결국 다양한 상상의 변형들이 시공을 초월해 대화하고, 고귀한 정신의 은신처인 예술이 ‘반(反) 운명’의 결정체로 승화된다는 점이 바로 이 책이 지닌 최대의 미덕이라 하겠다.

김동윤(건국대 교수·불문학·‘비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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