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역사와 지식인

  • 입력 2001년 2월 27일 18시 34분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 대한 주변국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중국은 이미 외교채널을 통해 우려를 전달했고 다음달 초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대응책을 논의할 것 같다는 보도다. 일본인들의 역사왜곡은 우리 정치권에도 충격을 주어 여야 의원 100여명이 당적을 초월하여 일본의 역사왜곡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마련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한다.

▷역사는 사실에 바탕해 기록하는 것이고 사실은 신성하다. 조선왕조실록의 편찬은 사실의 신성성을 최대한 보호하는 역사기록 과정이었다. 실록의 가장 중요한 기본자료는 사관이 날마다 일어나는 사실들을 작성해 둔 사초(史草)다. 그러나 왕조차도 이 사초는 볼 수 없게 돼 있었다. 그리고 실록편찬은 전왕이 죽은 뒤에 다음 왕의 책임 아래 하게 돼 있었으므로 왕이 자신의 치적에 관한 역사기록에 개입할 길이 없었다. 그런 원칙이 무너진 일도 더러 있긴 하지만 그것은 폭군이나 저지른 역사파괴행위였다.

▷조선조의 사초 중에서 가장 큰 사건을 불러일으킨 것이 세조 때 사림파 유학자인 김종직(金宗直)이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난하기 위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이다. 후에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金馹孫)이 사관으로 있으면서 스승의 곧은 역사관과 선비정신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이 글을 사초로 올려놓았다. 실록 편찬을 맡게 된 정파는 유자광(柳子光)계의 훈구파로 사림파와 숙적이었다. 훈구파가 조의제문이 대역죄에 해당한다고 보고하자 연산군이 김일손 등을 처형하고 타계한 김종직을 부관참시(剖棺斬屍)했다. 사초 때문에 일어난 이 무오사화(戊午士禍)로 많은 유학자가 참변을 당했다.

▷역사와 사실의 신성성을 지키는 것은 양식 있는 지식인들의 선비정신이다. 역사가 왜곡된 교과서를 일본정부가 채택한다면 그것은 일본 지식인사회의 양식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작년에 일본의 한 거물급 고고학자가 일본의 구석기시대를 70만년 전으로 조작하려고 유물을 몰래 파묻은 사건까지 일어난 것을 보면 지식인들의 양식 자체가 미심쩍기도 하다. 일본 지식인의 양식은 역사왜곡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재홍논설위원>nieman96@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