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총알차 타기

  • 입력 2001년 2월 23일 18시 48분


◇섬뜩한 삶에의 의지/스티븐 킹 지음/최수민 옮김/127쪽, 6500원/문학세계사

전 세계에 전자책(E북) 붐을 일으켰던 소설이 종이책으로 몸을 바꿨다. 지난해 3월 스티븐 킹이 이 작품을 온라인을 통해서만 공개하자 수백만 명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뤘다. ‘샤이닝’ ‘쇼생크 탈출’ 등 30여편의 베스트셀러를 내놓은 작가의 이름값과 e북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이 소설은 e북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였지만 상대적으로 작품 내용에 대한 관심은 적었다. 중편소설 분량의 간결한 소품에서 킹은 환상과 실재를 넘나들며 죽음의 선택이란 화두에 천착한다.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은 대학생 아들은 고향의 병원으로 떠난다. 달빛 가득한 밤에 그가 얻어탄 차는 저승사자가 운전하는 사계(死界)행 ‘총알차’였던 것. 시체냄새를 풍기는 운전기사는 주인공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총알차는 누가 탈 것이냐. 너냐, 네 엄마냐?”

아들은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전도유망한 자신이 희생할 것인가, 억척스럽게 살아온 가난한 중년 어머니의 죽음을 내버려 둘 것인가.

여기서 킹은 자신의 죽음 앞에서 어머니의 사랑은 물론이고 이승의 모든 가치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는 냉혹한 깨달음을 보여준다.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묘비명이 저승사자의 섬뜩한 속삭임처럼 들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그저 즐겁게(Fun is Fun. And Done is Done).’

이런 냉혹한 현실인식은 이 작품이 1999년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그의 재기작이란 점에서 각별해 보인다. 일찍 아버지가 가출해 어렵게 생계를 꾸리던 주인공 모자의 모습은 작가의 유년기 모습이 투영됐음은 물론이다. 원제 ‘Riding the Bullet’.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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