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아의 책 사람 세상]10대들이여, 삶을 사랑하자

  • 입력 2001년 2월 16일 19시 14분


자살 사이트를 찾던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잇따라 자살을 감행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십대들의 자살 충동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사회학의 고전인 뒤르켕의 역작 ‘자살론’에 의하면 자살은 이기적인 자살, 이타적인 자살, 아노미적인 자살로 나눌 수 있다. 십대의 자살은 그 중 아노미적 자살에 해당될 것이다.

뒤르켕은 아노미적 자살의 원인을 경제적 위기나 규제의 약화 등 사회적 원인에서 찾는데, 그 원인보다는 오히려 그가 아노미적 자살을 묘사하는 말이 십대의 자살에 더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욕구의 수준은 달성될 수 있는 한계보다 훨씬 멀리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와 같이 들뜬 상상에 비하면 현실은 너무나 무가치하다.’

어렸을 때부터 책과 TV와 음악과 게임과 애니메이션으로 감각이 예민해지고 풍부해진 십대들이 꿈꾸는 ‘뭔지 잘 모르지만 강렬한 삶’에 대한 상상에 비하면 현실은 무뚝뚝하고 지겨운 것이다. 거기에 대고 “사는 게 다 그런 거야, 가서 공부나 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자살할 이유만 하나 더 늘려준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자살이든 아니든 조금만 더 참았다가 멋지게 죽으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그 ‘조금’이 일 년일지, 십 년일지, 오십 년일지 그 이상일지는 그들의 선택에 달렸다. 살 이유가 없어서 죽는 것은 구차하고 안스럽다.

내가 문학작품에서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자살은 세익스피어의 희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열정에 찬 자살이 아니다. 로미오는 가사 상태에 빠진 줄리엣이 죽은 줄 알고, 줄리엣은 로미오가 죽은 것을 보고 자살을 선택한다. 로미오가 조금만 더 망설이고 기다렸더라면 둘의 사랑은 열매를 맺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얼마나 ‘젊은이답고’ 허망하고 어리석은 자살인가.

이에 비해 시엔키에비치가 쓴 고전소설 ‘쿠오바디스’에 나오는 귀족 예술가 페트로니우스의 침착한 자살은 성숙한 자살이다. 우아함과 재기, 예술적 감식안으로 황제 네로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던 그는 네로의 학정이 점점 더해가자, ‘당신은 천재가 아니라 미친 바보일 뿐’이라며 조롱하는 편지를 황제에게 보낸다. 그 당시의 정치상황에서 그런 편지를 보내는 것은 스스로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던 그는 폭군에게 자신의 생명을 넘기지 않기 위해 의사를 불러 가장 고통이 적은 방식으로 자살한다. 그는 자신의 재기와 품위를 지켜가며 살았고, 자기 삶의 미학을 지키기 어렵게 되자 윤택한 삶을 풍요로이 마감하는 방식으로 결국 자살한 것이다. 자살마저도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할 때만 아름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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