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테마무비]핏줄의 기록, 너의 가족사를 돌아보라

  • 입력 2001년 2월 9일 12시 30분


한국영화에서 '가족'이 사리진 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TV 연속극에서는 어느 채널을 돌려도 복닥거리는 가족의 이야기가 흘러 넘치지만 어느덧 블록버스터의 시대로 접어든 한국영화는 더 이상 '시시하게' 가족 따위는 보여주지 않는다. 물론 <학생부군신위>(96) <가족 시네마>(98) 같은 박철수 감독의 선정주의 가족 드라마나 <마요네즈>(98) 같은 모녀 심리 갈등 드라마가 있긴 했다. 그러나 중편 독립영화 <고추 말리기>(2000)만큼 진실하거나 감동적이진 않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중간 지점을 선택한 <고추 말리기>는 장희선 감독의 실제 가족들이 등장하는 가족 이야기다. 감독은 묻는다. 나의 어머니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 어머니의 어머니는? 그녀들은 영화감독인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지만 감독은 자신의 궁금증을 풀기보다는 영화가 진행되는 과정과 그 가운데서 발생하는 돌발상황, 그리고 '여인 삼대'의 자잘구레한 갈등을 조용히 담아낸다. 그렇다면 관객은? 우리는 1시간 동안 나의 가족을 비추는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한국영화에서 가족의 풍경이 사라져가고 있는 반면 할리우드의 중심은 여전히 가족이다. <보통 사람들>(Ordinary People, 80) <애정의 조건>(Terms of Endearment, 83) 같은 80년대 초의 아카데미용 보수주의 가족영화부터 최근의 <아메리칸 뷰티>(American Beauty, 99)까지, 그들의 가족 이야기는 끊일 줄 모른다. 가족사를 담은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 중 한 편만을 뽑아내라면 뭐니뭐니 해도 폴 슈레이더 감독의 <어플릭션 Affliction>(97)이다.

뉴햄프셔 지방 한적한 시골. 마을 유지 한 명이 사고로 죽지만 경찰 웨이드는 분명 살인사건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건을 수사해나가면서 가족의 아픈 상처와 맞닥뜨린다. 그를 가장 괴롭히는 건 '아버지'라는 이름의 괴물. 어쩌면 웨이드의 괴로워하는 모습과 학대받는 자식들은 수천 년을 이어 내려온 인류의 어두운 자화상이다. 결국 웨이드는 아버지를 집과 함께 불태우고 창 밖에서 '괴물의 죽음'을 바라본다. 서부극의 대표적인 성격파 배우였던 제임스 코번은 아버지 연기로 70세의 나이에 첫 오스카를 수상했지만(남우조연상) 그의 연기는 오스카 이상이었다.

반면 <길버트 그레이프>(What's Eating Gilbert Grape, 93)는 어머니를 불태운다. 인구 1,091명의 아이오아 주 엔도라. 그 마을엔 청년가장 길버트 그레이프가 산다. 정박아 동생 어니, 노처녀 누나와 철없는 여동생, 그리고 남편의 자살 이후 점점 체중이 늘어 고래처럼 돼버린, 그래서 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엄마. 당신이 길버트라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길버트 그레이프>는 삶의 무게에 의해 완전히 집어삼켜진 길버트의 고운 영혼이 그 고통을 이겨나가는 과정을 찬찬히 보여준다. 결국 그는 자유분방한 캠핑족 베키를 통해 사랑과 자유를 배우고 불타는 집을 뒤로 한 채 새로운 길을 떠난다.

집과 가족에 대한 또 한 편의 영화를 꼽으라면 단연 <하워즈 엔드>(Howards End, 92)다. 왠지 모르게 지루할 것 같은 선입관 때문에 선뜻 고르기가 힘들지만 제임스 아이보리의 귀족사회 이야기는 의외로 재미있고 유장한 아름다움이 있다. 슐레겔 집안과 윌콕스 집안의 오랜 애증을 다룬 이 영화에서 유서를 통해 슐레겔 집안에 넘겨진 집 '하워즈 엔드'는 성역과도 같은 곳이다. 윌콕스의 후손들은 이 집을 결코 빼앗기지 않으려 한다. <하워즈 엔드>의 모든 갈등은 이 집을 무대로 펼쳐지는데 중요한 것은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온화한 마가렛 슐레겔에 의해 서서히 변화되는 고집불통 헨리 윌콕스의 '영혼의 공간'이다.

가족 이야기에서 부모와 자식의 화해라는 테마를 빼놓을 수 없다. 부녀지간인 헨리 폰다와 제인 폰다는 <황금 연못>(On Golden Pond, 81)에서 연기가 아닌 실제 자신들의 갈등을 드러내고 드디어 화해한다. 페미니즘과 반전운동의 투사였던 제인 폰다와 다소 보수적인 아버지 헨리 폰다. 긴 시간 동안 냉전 상태였던 그들이 이 영화에서 만들어낸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다이빙 장면이다. 실제로 헨리 폰다는 어린 제인 폰다에게 뒤로 회전하는 다이빙을 시키곤 했는데, 제인 폰다는 두려움 속에 실패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 마지막 부분, 이제 중년이 된 딸 제인 폰다는 아버지 몰래 다이빙을 연습했고 '황금 연못'에 멋지게 뛰어든다. 그다지 극적인 장면은 아니지만 딸의 진심 어린 화해의 손짓과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늙은이의 눈가에 번지는 촉촉한 눈물. 76살의 노인 헨리 폰다는 유작인 이 영화로 생애 최초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다음 해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형석(영화칼럼리스트)woody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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