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매춘단속, 강력 제재-성인 허용 두얼굴

  • 입력 2001년 1월 30일 18시 45분


‘백만이 넘는 여인들이 얼굴과 이름을 가리고 낮과 밤이 없는 대지를 누비는 현실…. 정책까진 못 만들어도 그네들 역시 인간이며 이 땅의 민주주의를 같이 호흡하고 살 자격이 있음을 승인해야 한다.’(박종성 ‘한국의 매춘’중에서)

우리나라는 윤락행위방지법에 의해 매춘이 완전 금지된 국가지만 현실적으로는 매춘이 전국에서 성행하고 있다. 이 ‘법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정부도 사실상 ‘종합대책’이란 것을 포기한 지 오래다.

길은 두 가지다. 법에 따라 단속을 강화해 매춘을 완전히 없앨 것인가, 아니면 현실적으로 매춘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를 잘 ‘관리’할 것인가. 서울의 대표적 홍등가 가운데 전자의 길을 가고 있는 ‘천호동 텍사스’와 후자의 길을 택한 ‘미아리 텍사스’에서 비치는 ‘매춘정책의 두 얼굴’을 비교, 문제점과 대안을 살펴본다.

▼천호동▼

28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 423 속칭 ‘천호동 텍사스’의 한 윤락업소에서 불이 나 손님 한 명이 질식해 숨졌다. 그는 강력단속을 벌이고 있던 경찰이 두려워 업소 밖으로 나가기를 꺼리다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천호동 윤락가에 대한 경찰의 ‘1차 정벌’은 96년 시작됐다. 거의 매일 단속을 벌인 끝에 당초 170여개 업소가 60여개로 줄었다. 올 들어 새로 부임한 주상용(朱相龍)강동경찰서장은 ‘2차 정벌’을 시작했다. 주서장은 “매춘을 뿌리뽑는 것 외에 다른 타협은 절대 없다”며 부임 이후 매일 단속을 벌이고 있다.

이 때문에 이곳 윤락여성들의 ‘복지’수준은 ‘미아리 텍사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불법영업이기 때문에 ‘월급통장’ 같은 선진국 홍등가를 모방한 제도는 물론 없고, 정기적인 건강검진도 받지 못한다.

업주의 반발도 심하다. 업주 김모씨(46)는 “미아리 등 다른 곳은 영업을 묵인 받고 있는데 유독 천호동만 단속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이런 식의 단속은 매춘사업을 다른 구로 떠넘기는 효과밖에 낳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아리▼

지난해 1월 여성인 김강자(金康子)총경이 관할 종암경찰서장으로 부임한 이후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미아리 텍사스’는 큰 변화를 겪었다. 미성년자 매춘과 노예 매춘이 거의 사라졌고 윤락여성들은 월급통장을 갖게 됐다.

윤락여성들의 호응도 크다. 김모씨(25·여)는 “‘우리도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것이 가장 큰 변화”라며 “요즘에는 돈을 모아 자립해 나가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엄격히 따지면 미성년자 매춘만 단속하고 성인매춘은 사실상 묵인하는 경찰의 태도는 ‘공개적으로 법을 어긴’ 행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 매춘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업주들이 서장과 한자리에 모여 ‘앞으로의 영업 방침’에 대한 토론회를 가진 적도 있다. ‘텍사스 관리’는 그것이 낳은 몇 가지 성과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을 무시한 채 진행됐다는 한계를 안고 있는 셈이다.

▼경찰 대책 및 문제점▼

현실과 법 사이의 괴리가 너무 큰 때문인지 경찰은 매춘에 대해 ‘무대책이 대책’이라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모든 불법행위에 대해 단속하는 것이 경찰의 임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관할 경찰서에 맡기는 방법밖에 없다”고 실토했다.

그러나 경찰의 의지 부족을 지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경찰이 매춘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론을 모으려는 시도를 한 적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서원대 정치학과 박종성(朴鍾晟)교수는 “사회적 현실로 존재하는 매춘은 ‘거룩한 법집행’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며 “무엇이 진정한 해결책인지에 대해 공론화 과정을 거쳐 법 자체부터 다시 논의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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