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보의 옛날신문 읽기]순결과 정절의 적 `아리랑 드레스'

  • 입력 2001년 1월 16일 11시 36분


지난 회 `앙드레 김, 사랑해요!'를 읽고 의상디자인학과 학생이신 권영현님 등 몇몇 독자분들이 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중 몇분이 기사에 언급된 `아리랑 드레스'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고 하셨지요.

< 이중 3부에 나온 푸른모시의 아리랑 드레스와 저고리를 벗으면 이브닝 드레스로 입을 수 있는 누런 베로 만든 아리랑 드레스가 특히 인기를 모았다.>

이 부분에 언급된 그 아리랑 드레스 말입니다. 저는 그 글을 쓰면서 그냥 개량한복 같은 걸 그때는 그렇게 불렀나보다 하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더 자세히 알고싶다는 분이 계시니 어쩝니까. 사명감을 갖고 또 낡은 신문을 찾아보았습니다.

오호, 당시에는 아리랑 드레스란게 대단히 화제였나 봅니다. 그 물건을 두고 찬반양론까지 벌어졌더군요. 사태의 전말을 가장 잘 알려주는

칼럼을 한편 찾아냈습니다. `아리랑 드레스 반론'이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65년 4월25일자 기삽니다.

< 요사이 무대의상으로 아리랑 드레스를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은 물론 한국고유의 여성복의 아름다움에다 서구식의 미를 가미하여 한양(韓洋) 절충을 시도하여 본 디자이너의 노력의 흔적인 것같다. >

네, 짐작대로 개량한복이군요. 한양 절충이란 표현이 재밌습니다. 더 읽어보시지요.

< 그러나 이 아리랑 드레스가 아마튜어인 나에겐 어딘지 한구석이 빠진 것과 같은 부조화를 느끼게 하는 것은 웬일일까?

의상 자체에 균형과 조화의 결함이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보는 나의 미적 감각이 낡은 전통에 젖어서 현대미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한 탓일까 생각하여 본다. >

필자는 아리랑 드레스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군요. 과연 필자는 그 물건이 왜 맘에 들지 않는지 근거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 원래 한국 고래의 여성의상인 치마저고리는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공인되어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아름다음은 여성의 곡선미를 은폐하는 폐쇄적인 통일된 원칙하에서 그 상반신과 하반신의 조화의 미에 중점을 둔 것이라 하겠다. 움직이지 않는 단아한 저고리 밑에 길게 여유있게 흘러내린 긴 치마 속에서 은은하게 꿈틀거리는 보드라운 여성의 하반신-이것이 하나의 아름다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웃저고리는 그 단아한 맛이 생명이라 할수 있다.

즉 부드럽고 매끈한 여성의 목을 단정하고 깨끗하게 둘러싸서 펑퍼짐한 양쪽 젖가슴 사이에서 야무지게 합류한 한줄기 백선인 동정-이것이 바로 웃저고리의 생명이다.

그 하얀빛이 순결의 상징이고 젖가슴 사이에 야무지게 맺어진 백선의 매듭이 침범하기 어려운 여성의 정절을 상징하는 것과 같다.

이러하거늘 아리랑 드레스는 이 웃저고리의 장점을 깨뜨려버린 것과 같이 느껴지는 것은 나 혼자 만의 망녕일까 >

이 대목까지 읽고 글에 첨부된 낡은 흑백 사진을 다시 한번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자태의 모델이 아리랑 드레스를 입고 사진 속에서 미소짓고 있군요. 자세히 보니 정말 웃저고리 부분이 가슴 노출을 얼마간 허용하고 있군요.

보수적인 60년대의 한국사회에서 가슴이 보일 듯 말 듯 노출을 하고 있으니, 어허 이거 큰일났습니다. 필자도 `순결의 상징' `여성의 정절 상징' 등의 표현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제 본심을 밝힙니다.

< 즉 아리랑드레스의 벌어진 젖가슴은 원래가 폐쇄성으로 일관된 한복의 전체적 조화를 깨뜨려 놓았고 더구나 웃저고리의 생명인 동정의 백선이 합류하는 매듭의 야무짐을 파괴하여 놓은 것은 단아와 정결의 한복 고유의 아름다움을 상실케 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노출을 원칙으로 한 서구식 드레스와 은폐를 원칙으로 한 한복의 조화절충은 어려운 것이다. 잘못하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괴물이 되기 쉬운 것이다. 아리랑 드레스도 이러한 실패작이 아닌가 생각한다. >

동정의 백선이 합류하는 매듭 부분이 약간 벌어졌다고, 그래서 노출이 아니라 약간의 노출 위험성이 있다고 필자는 이렇게 걱정하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아리랑 드레스를 고안한 디자이너들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지요.

칼럼의 필자는 김기두 서울법대 교수님이십니다. 디자이너도 아니고 옷회사 사장도 아닌 법대 교수님이 이런 옷 칼럼을 쓰고 있는게 흥미롭지요?

옛날 신문들을 보면 이렇게 세상만사 모든 일에 교수님들을 모시고 고견을 듣곤 하지요.

그런데요, 따져 들어가보면 우리 전통한복이 오로지 우리의 것만도 아니라고 합니다.

복식사를 연구하는 분들에 따르면 한복의 역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로부터 시작됐다고 하지요. 고구려 시대 왕과 귀족의 무덤 벽화를 보면 한복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답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배운 바지만, 고구려는 당나라의 의상과 불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요.

그뿐입니까. 그 뒤로도 한반도의 왕과 몽골족 공주와의 혼인을 통해 중국 용안시대의 옷이 유입됐고, 그것이 한복의 시초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복은 세월이 흘러도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는군요. 저고리 길이, 소매통 넓이, 치마폭이 조금씩 달라지기는 했지만 디자인 자체가 크게 변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60년대 중반 앙드레 김 등 일단의 디자이너들이 아리랑 드레스라는, 노출의 위험이 다분한 한복을 만들어 유행시키고 있으니 여러 어른들께서 화가 나신 거지요.

다음 주면 설날이로군요. 오랜만에 한복 곱게 차려입고 멋 한번 부려보십시오.

그리고 궁금하면 거울도 한번 보고 확인해보세요. 이거 혹시 아리랑 드레스 아냐?

늘보 <문화평론가>letitb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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