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진단]폭설 농가피해 확산/알로에농장 운영 방희숙씨

  • 입력 2001년 1월 10일 18시 44분


대전 유성구 방현동에서 부농의 꿈을 안고 3년째 알로에 농장을 운영하는 방희숙(方喜淑·38·한일농장 주인)씨.

“처녀시절 그렇게 좋아하던 눈인데…. 이렇게 악마가 되어 다가설 줄은 몰랐어요.”

그는 3년만에 수확하는 알로에의 올 봄 출하를 앞두고 ‘설마(雪魔)’앞에 주저앉아 긴 한숨만을 내쉬었다.

방씨는 7일 새벽 눈을 뜨자마자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눈으로 환희에 젖은 것도 잠시.

집에서 50m쯤 떨어진 농장을 둘러보기 위해 나섰다. 아니 이럴 수가…. 500여평 크기의 비닐하우스 4개동이 25㎝의 폭설에 무너져 내린 모습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본격적인 출하를 불과 2∼3개월 앞두고 그토록 정성을 들여 가꾼 알로에는 비닐하우스 철제에 깔려 이리 저리 상처투성이였다. 허겁지겁 비닐을 거두어 내며 살펴봤으나 성한 것은 별로 없었다.

“이건 11세짜리 우리 용겸(아들)이의 미래예요. 남편과 온갖 정성을 다 들였는데….”

방씨는 짓눌린 알로에를 부둥켜안은 채 눈물을 펑펑 쏟았다.

“축사가 붕괴돼 자살한 농민의 심정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지금 그런 심정이에요.”

방씨가 농민의 길로 들어선 것은 3년전인 98년. 아파트 철문을 납품하는 남편 김영호씨(42)가 건설경기 침체로 부도를 맞게 되자 시부모가 운영하던 알로에 농장을 맡았다. 4000만원을 대출받아 부농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사시사철 돌봐야 하는 알로에의 특성 때문에 무더운 여름에도 비닐하우스 안에서 구슬땀을 씻어내며 2001년 3월 출하의 날만을 꼽아 왔다.

남편 김씨는 출하에 대비해 녹즙공장과 건강식품소매점 등에 열심히 판로를 개척했다.

“한번은 한여름날 친정 어머니가 찾아오셔서 비닐하우스에서 땀을 흘리는 제 모습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셨어요. 귀한 딸 고생한다고요. 그러나 저는 마음속으로 ‘어머니, 돈 많이 벌어 빚도 갚아 드릴게요’라고 다짐했었죠.” 폭설 피해소식이 알려지자 향토사단인 32사단 장병들이 달려와 그나마 다치지 않은 알로에를 찾아내느라 안간힘을 쏟았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지원 나온 우지현중령(45)은 “성한 알로에를 찾으려고 무너진 비닐하우스를 치워봤지만 피해규모가 너무 커 이렇다 할 위로의 말도 하지 못했다”며 “하루빨리 재기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당 3000원에 이르는 알로에를 700∼800원에 가져가려는 장사꾼까지 찾아와 더욱 분통터지게 했다.

“재해지역으로 선포된다나요? 하지만 당국에서 조사를 나왔는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언제는 안 그랬나요.”

방씨는 비닐하우스를 철거하려 해도 손길이 부족하다며 부러진 알로에를 부둥켜안은 채 원망의 눈빛으로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대전〓이기진기자>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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