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월드]"그린스펀을 벤치마킹하시오" 영국 이코노미스트

  • 입력 2001년 1월 10일 18시 34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본받아야 한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지는 6일자 아시아판에 유럽 공동통화인 유로 출범 2년을 맞아 유럽중앙은행의 공과를 분석하는 기사를 싣고 있다. 이 기사에서 이코노미스트는 빔 도이센베르흐 ECB 총재(66)는 ‘그린스펀 효과’로 불리는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75)의 독특한 ‘화법’에서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유럽중앙은행이 유로체제를 끌어오면서 보인 가장 큰 문제점은 통화정책을 시장과 언론에 적절하게 알리는 방법을 모른다는 지적에 곁들인 충고였다.

지난해 도이센베르흐 총재는 유로와 관련해 실언을 거듭했다. 1월에는 “유로의 하향세가 끝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유로 가치는 이제 올라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유로 가치는 1년 내내 하향곡선을 그렸다. 11월에는 ‘유로화가 성공한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아직 판단할 때가 아니다”고 대답했다. 이는 곧바로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 유로화의 가치는 연일 폭락했다.

실언이 잦자 프랑수아 롱클 프랑스 의회 외교위원장은 “도이센베르흐 총재가 입만 열면 유로화 가치가 떨어진다”며 “그는 무능하거나 무지 또는 무책임하다. 아니면 셋 다 해당된다”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사임해야 한다는 말도 여기저기서 나왔다.

이에 비해 그린스펀 의장은 평소 말을 아끼다 중요한 순간에 한마디를 함으로써 효과를 보았다. 도이센베르흐 총재는 재임 3년째를 맞고 있는데 그동안 한 달에 한 번 가량 공식회견을 가져왔다. 재임 14년째인 그린스펀 의장은 정례 브리핑 대신 연설 등을 통해 수시로 의중을 내비쳤다. 지난해 12월5일 미국의 각종 경제지표가 경기둔화 조짐을 드러내자 그린스펀 의장은 간단히 언급했다. “급격한 성장둔화를 경계하며 인플레 부담이 줄어든 것을 주목한다”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 발언을 즉각 ‘금리인상 시사’로 받아들였고 증시 사정은 즉각 호전됐다.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정책을 활용하는 통화정책의 귀재인 두 사람의 차이는 제도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그린스펀은 미국이란 단일 국가의 기구 의장으로 리더십이 강력하다. 그렇지만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회원국 중앙은행 총재 12명 등 18인 집행위원회의 중재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지난해 도이센베르흐 총재가 유로 가치 하락에 개입 않겠다는 의중을 비쳤지만 집행위원회는 거꾸로 부양책을 편 것은 ECB의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그린스펀 의장은 지난해 6월 4번째 임기를 시작해 2004년 6월까지 재임하며 도이센베르흐 총재는 2002년 6월 퇴임한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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