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新관치금융 부활하는가…정부시장개입 사례들

  • 입력 2001년 1월 8일 18시 50분


시장 원칙을 무시한 신관치(新官治)금융이 곳곳에 만연하고 있다.

과거 정부는 경기 부양과 금융시장을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창구 지도를 통해 시장에 개입해 왔지만 최근 관치 금융은 그 수법이 교묘화, 고도화되면서 오히려 과거보다 간섭의 내용과 강도가 심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전문가들은 “시장 원칙론과 관치 금융 철폐를 내세워 온 정부가 개별 사안에 대해서는 현실론을 들어 원칙을 무시하고 있다”며 “이는 결국 금융시스템을 망가뜨리고 또 다른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교묘해진 관치금융 실태〓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정부의 관치 금융 실태에 대해 “5공 때는 증거라도 남겼지만 요즘은 증거가 남지 않는 교묘한 방법으로 시장에 간섭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관치 금융의 출발점은 은행장 인사권을 정부가 쥐고 있는데 근본 원인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 현재 신한, 하나은행을 제외하고 모든 시중 은행의 행장을 정부가 선임한다. 이 관계자는 “극소수 은행을 제외하고 은행장을 정부가 임명하는 상황에서 은행이 어떻게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느냐”라고 반문하면서 “외국인이 행장인 제일은행의 산은 회사채 재인수 거부 파동도 따지고 보면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민, 주택은행의 합병과 관련해서도 정부의 영향력은 크게 작용했다. 정부는 그동안 외부적으로는 개별 은행의 합병건에 관여할 입장이 아니라고 밝혀 왔지만 뒤로는 언론을 통해 합병 사실을 흘리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였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개별 은행, 특히 정부가 최대 주주가 아닌 은행간에 극비리에 추진하고 있는 합병 건에 대해 정부가 내용을 미리 안다는 것 자체가 막후에서 간섭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결국 국민 주택은행은 정부의 은행 대형화 논리에 밀려 구체적인 시너지 효과조차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합병을 강행했고 결과는 은행 파업으로 인한 국민적인 피해로 돌아왔다.

이뿐만 아니다. 지난해 시장 안정을 위해 10조원씩 1, 2차 채권안정기금을 조성할 때도 정부는 시장 안정 협조를 부탁하며 일방적으로 은행들에 책임을 분담시켰다. 물론 형식은 ‘협조’였지만 정부가 금융기관의 대주주와 금융감독권자, 금융정책 입안자의 1인 3역을 수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협조를 거부할 만큼 용기가 있는 금융기관은 있을 수 없다는 것.

해마다 결산 때면 정부가 은행 관계자들을 불러 특정 부실기업 대출에 대한 대손충당금 비율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도 시장의 자율성과 고객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밖에 한투와 대투에 투입한 공적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투신사가 판매하는 상품에는 비과세 혜택을 주고 자산운용사의 뮤추얼펀드에는 전혀 혜택을 주지 않은 것도 시장의 원칙을 무시한 ‘역차별’시비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관치금융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전문가들은 정부가 스스로 내건 4대 부문 개혁의 완결 시한에 얽매여 ‘조급증’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 주택은행 합병건에서 나타났듯이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내기 위해 당국자들이 말을 흘린 결과, 노조 반발을 불러일으켜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이 그 예다.한 시장 관계자는 “원칙을 무시한 편법은 또 다른 편법을 낳고 이는 결국 정상적인 방법으로 원칙을 지키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 수밖에 없다”며 “현실도 물론 중요하지만 언제까지 원칙을 무시한 정책을 양산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훈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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