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영해/'낙하산' 놔두고 웬 공공개혁

  • 입력 2000년 12월 5일 18시 51분


5일 오전 11시 재정경제부 기자실. 이날 청와대에서 열리는 4대부문 12대 핵심 개혁과제 점검회의에 대한 브리핑이 있었다. 공공개혁에 대한 설명에서 정부가 가장 강조한 부분은 공기업 책임경영 체제 확립과 방만경영 쇄신.

조원동(趙源東)재경부 정책조정 심의관은 “공기업사장 책임경영체제가 오늘 발표의 하이라이트”라고 힘주어 말했다. 민간기업처럼 공기업에서도 책임경영이 이루어지도록 사장과 경영계약을 하고 실적이 부진한 사장은 인사조치하겠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 이를 위해 정부는 각계 인사를 망라한 인력자원 풀(pool)을 만들어 외부전문가가 후보인사를 주무부처 장관에게 추천한다는 방안을 설명했다.

이 내용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1월 27일로 돌아가 보자. 당시 진념(陳稔)기획예산처장관은 새해 업무보고에서 “공기업개혁 실적이 부진한 기관장은 3월말까지 문책하겠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그 뒤 공기업 기관장이 경영부실의 책임을 지고 옷을 벗은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공기업 구조개혁을 책임지고 있는 기획예산처는 이후에도 수시로 ‘책임경영체제 확립’ ‘문제경영진 문책’ 등을 단골메뉴로 들고 나왔다.

정부가 숱하게 약속을 해놓고도 공기업 개혁이 이처럼 게걸음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권 인사나 퇴임관료를 줄줄이 공기업 사장에 앉힌 정부 탓 아닌가. 사장후보추천위원회는 들러리가 되기 십상이었고 낙하산인사가 이어졌다. 갑자기 최고경영자로 내려온 ‘무자격 사장’은 노조를 달래기 위해 구조조정은 뒷전인 채 당근 주는 일에 열을 올렸다. 일부 공기업은 사장만 바뀌면 보너스를 받고 월급을 올리는 기회로 활용했다.

정부가 이날 ‘하이라이트’라고 내놓은 ‘공기업 사장 책임경영’은 그동안 수없이 국민에게 약속한 재탕 삼탕의 공약(空約)이다. 그동안 공기업 개혁을 이루지 못한 이유를 밝히는 것이 올바른 순서가 아닐까.

최영해<경제부>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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