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요리 맛있는 수다]'수제비', 너는 아느냐? 비오는 소리

  • 입력 2000년 11월 20일 14시 44분


대학시절, 비만 오면 짬뽕 국물에 소주를 마시러 가자고 꼬시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웬 궁상이냐며 한소리 했겠지만 그때만 해도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마땅히 만날 남자친구도 없었던지라 늘 그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곤 했지요. 지금 생각하니 참 처량 맞은데 그 땐 또 그게 무슨 대학의 낭만일 줄 알았답니다. 음...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비오는 날이면 따뜻하고 부드러운 수제비를 찾게 되더군요. 낭만적인 소주 한잔은 어떻게 됐냐구요? 낭만은 무슨... 소주 때문에 망가진 위장과 피부를 복원하느라 시간깨나 걸렸습니다.

'수제비'하면 최진실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렵던 시절 밥이 없어 수제비를 먹고 버티며 스타가 되었다죠? 밥이 없어서 수제비를 먹는 불상사를 겪어보진 못했지만 빗소리를 들으면서 먹는 수제비는 밥 생각을 까맣게 잊을 만큼 맛이 있습니다.

'맛있는 수제비'의 생명은 쫄깃한 반죽과 개운한 국물! 요리에 자신 없는 주부지만 어찌된 일인지 수제비 반죽 하나는 자신 있습니다. 아마도 타고난 힘(!)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수제비 반죽은 너무 말랑말랑한 것보다는 '이거 좀 된 것 아닌가?'할 정도가 알맞은 것 같더라구요. 그러자면 손아귀와 팔의 힘이 장난아니게 들어가죠. 엄지 손가락 밑이 얼얼해질 때가지 주물러줘야 제 맛이 나니...수제비를 쉬운 요리라고 하는 인간들은 다 모아다가 커다란 양푼에 밀가루 잔뜩 부어주고 반죽 한번 해보라고 시켜봐야 한다니까요.

물의 양을 잘 맞추는 게 포인트인데 반죽을 치대는 손의 느낌상 '물 조금만 더 넣을까?'하는 순간에 멈춰주면 쫄깃하죠. 꾀 부리면서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놓으면 국물에 넣었을 때 질척하게 퍼져서 꽝입니다.

아, 또 수제비를 떼어넣을 때 뭉텅뭉텅 떼어넣는 사람들 있는데, 수제비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용서 못할 일이죠. 종이장처럼 얇지는 않더라도 열과 성을 다해 얇게 떼어넣어야 야들야들한 수제비가 된답니다. 떡점처럼 퉁퉁한 수제비는 매력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물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있는 집에서는 조개도 넣고 새우도 넣고 하는 모양이지만 저는 그냥 멸치랑 다시마로 국물을 만들어 먹습니다. 그게 담백하거든요. 맛이 '밍밍하다' 싶으면 청양고추를 하나 썰어 넣죠. 그럼 그 얼얼한 맛에 이 국물이 제대로 된 국물인지 따질 여유가 없어져요. 하지만 이 방법을 쓸 때는 약간의 연기가 필요합니다. 즉 '이건 내 비법인데 자기에게만 살짝...' 이런 식이어야지, '사실 이게 맛이 좀 밍밍해서...' 이래버리면 기껏 만든 수제비, 외면당하죠.

아, 그리고 수제비와 가장 궁합이 잘 맞는 메뉴는 약간 신 총각김치입니다. 수제비 "후룩∼" 한입 떠먹고 총각김치 "아삭" 베어먹고, 비 "후둑후둑" 내려주고... 환상의 하모니란 바로 이런 거랍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수제비 만드는 법***

재 료 : 밀가루 2컵, 물 적당량, 소금 조금, 멸치 30마리, 다시마 1장, 감자 2개 (비상시를 대비한 청양고추나 조미료)

만들기 : 1.밀가루에 소금을 조금 넣고 반죽한다.

2.밀가루 반죽을 젖은 면보에 싸서 냉장실에 넣어둔다.

3.찬물에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충분히 끓인 후 멸치를 건져낸다.

4.감자를 도통하게 썰어놓는다.

5.국물에 감자를 넣고 끓이다가 밀가루 반죽을 얇게 떼어넣는다. (서로 들러붙지 않도록 시시때때로 저어주면서...)

6.소금, 후추, 조미료, 청양고추 등을 이용해 최대한 간을 맞춘다.

ps. 비가 올 때마다 소주 찾던 그 친구와는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어디선가 쓰라린 위장을 부여잡고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을까요? 그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네요. "자네도 이젠 나이 생각 좀 하게..."라고.

조수영 <동아닷컴 객원기자> sudatv@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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