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명/개혁은 집권층 내부부터

  • 입력 2000년 11월 14일 17시 12분


요사이 우리 사회는 위기설로 어수선하다. 현대건설이 위기에 처해 있고 대우자동차는 법정관리를 받게 됐다.

의약분업 파동이 몇 달을 끌고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항의 시위가 거세다.

증시는 파탄 일보직전으로 내몰리고, 실업자와 노숙자는 거리를 헤맨다. 정치권은 여전히 진흙탕을 헤매고, 어디에서도 나라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줄 슬기로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세계화의 광풍 앞에서 나라의 정체성은 갈 곳을 잃고, 얄팍한 시장논리가 교육과 문화마저도 잡아먹어 온 사회에는 가벼움과 천박함이 출렁이고 있다.

김영호(金泳鎬)전 산업자원부장관이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가신그룹과 경제관료, 부패 보수세력의 문제를 지적한 것은, 우리나라가 어려움에 처한 가장 중요한 원인이 현정권의 수뇌부에 있다고 보는 필자의 견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현 정권은 소수파 정권이다. 소수파 정권의 최우선 목표는 생존이다. 물론 대통령의 임기가 보장된 만큼 정부의 생존 자체가 문제되는 것은 아닌지라 여기서 생존은 곧 통치력을 의미한다.

우선 현정권은 지역으로 소수파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지역감정을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자신이 오히려 지역감정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집권 초기의 인사가 호남으로 편중된 것은 그래도 이해가 간다. 그동안 당한 핍박을 보상하고 도와준 인사들을 등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나 집권 후반기인 지금도 그런 현상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것은 분명히 잘못됐다.

윤리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소수파 정부가 지역기반을 확대하지 못하고 좁은 울타리에 갇힐 때 나타날 (국가발전은 고사하고) 정권 자체의 위기를 체득하지 못하고 있다. 현정부는 과거에는 지역에 기반해야 살 수 있었지만 이제는 지역에 기반하면 죽게 생겼다. 푸는 길은 하나다. 지역기반을 떨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통령이 지역기반을 떨칠 힘이 없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가신'을 거느린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힘이 호남의 수구 '기득층'을 박차고 나와 전국의 힘을 모을 만큼은 되지 못한다.

현정권은 지역 뿐만 아니라 이념상으로도 소수파다. 대통령은 원래 '기층 민중'을 사랑하는 진보이념을 내세웠다. 그러나 보수층의 반발이 거세자 스스로 이를 접고 시장주의자, 세계화론자를 자처하고 나왔다. 그러면서도 '민중 사랑'의 입발림은 포기할 수 없는 처지다.

여기서 정책혼선이 나온다. 자민련 같은 골수 보수를 자처하는 당과 연합하면서 동시에 김정일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고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펼친다. 한편으로는 서민경제를 얘기하며 실제로는 재벌 개혁에 큰 의욕이 없다.

이렇듯 현정권의 이념적 지표는 애매하다. 보수층은 이런 그의 회색빛이 못마땅해 그의 대북정책에 뭇매를 가하고, 진보파는 진보파대로 그의 개혁의지 부족을 추궁한다.

현정권의 어려움은 뭐니뭐니 해도 그 무능함에 있다. 그 무능함은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소수파 정권의 성격에서 나온다. 지역기반의 좁은 패거리 정치에 의존하다 보니 능력보다는 인맥과 학맥으로 공직자가 충원되고, 충성경쟁이 출세의 지름길이 되니 능력 있는 인재들이 핵심적인 정책결정집단에 끼지 못한다.

이념적으로도 보수로 전향한 인사를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기존의 보수권이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니 정권의 설 자리가 좁다. 그 결과 정부는 뚜렷한 이념이나 정책방향도 없이 이익단체들의 이권싸움에 끌려다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개혁은 집권층 안에서부터 일어나야 한다. 과감한 인사 혁파를 단행하고 뚜렷한 정강정책을 밝히고 이를 일관되게 추구해야 한다. '동교동'이니 '가신'이니 하는 말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그들은 이 복잡한 대한민국을 이끌 능력이 없다. 대통령은 어차피 단임이다. 2년여 남은 임기 동안 나머지 개혁 작업을 이뤄내야 한다. 물론 임기 중에 개혁을 다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개혁의 기반을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 더 이상 이리저리 기웃거리지 말고 소신을 가지고 개혁정책들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김영명(한림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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