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갈등

  • 입력 2000년 11월 13일 18시 55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하 정문연)이 또다시 내부 갈등에 휩싸이고 있다. 한상진 원장의 임기를 연장하는 문제를 놓고 정문연의 일부 교수들이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나타내면서 얼마전 국정감사에서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 원장이 한국측 대표를 맡고 있는 외규장각 도서반환협상과 관련해서도 정문연 교수와 연구진이 한 원장이 프랑스측과 합의한 이른바 '맞교환 방식'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이같은 갈등은 그 책임이 어느 쪽에 있던 간에 정문연 내 지도부와 일부 연구진들이 서로 등을 돌리고 있고 손발도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문연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국학 연구기관이며 더구나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고 있다. 이런 어수선한 내부 분위기라면 정문연이 국학 진흥과 민족문화 탐구라는 본연의 역할을 해내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요즘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마당에 정문연의 연구 공백은 곧 우리 학계, 특히 국학과 인문학 등 기초학문 분야의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갈등이 초래된 배경에 대해서는 서로 입장이 엇갈린다. 임기 연장 문제의 경우 일부 교수들이 한 원장이 교육부로부터 2년 임기를 승인받아 놓고는 추가로 1년을 더 연장하려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한 원장측은 정문연 정관에 원장 임기가 3년으로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내세운다.

한 원장 측은 또 한국학 전문연구기관을 목표로 얼마전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꾀하는 과정에서 일부 교수들이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지자 고의적으로 한 원장의 문제를 외부에 제기하고 나섰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유가 어찌됐든 간에 이번 정문연의 내부 갈등은 기본적으로 원장 등 지도부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과거 정권에서 정문연은 한국학 연구보다는 정권의 통치이념을 뒷받침해주고 합리화하는 역할에 더 큰 힘을 기울여온 것이 사실이다. 이번 정권 들어서 정문연은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지만 한 원장이 토론회 등에서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는 등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정문연이 지난 4.13총선 직전에 개최한 386세대를 테마로 한 학술대회도 비슷한 이유에서 학계에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 협상에 대해 일부 교수와 연구원들이 반대입장을 표명한 것에 대해서도 정문연 지도부는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여야 한다. 국내 첫 손 꼽히는 한국학 연구기관인 정문연의 원장이 학계가 한 목소리로 반대하는 '맞교환' 방식을 주장한 것은 결과적으로 학계의 입장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같이 지도부에 대한 누적된 불신이 이번 내부 갈등에는 분명 포함되어 있다.

정문연이 과거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한국학 요람으로 거듭나려고 노력하는 것은 높이 평가할만 한 일이다. 이것이 단지 구호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정문연 지도부가 먼저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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