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Magazine]과장-선정보도 '미디어톤' 판친다

  • 입력 2000년 11월 2일 19시 35분


걸프전이 끝난 지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이 전쟁은 이미 미국 역사 속에서 일어난 부수적인 사건쯤으로 치부되고 있다. 그러나 CNN이 이 전쟁을 재료로 만들어냈던 그 화려한 보도 프로그램들은 미국 오락물 역사의 이정표로서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걸프전은 로고와 테마음악을 가진 최초의 전쟁이었고 콜린 파월이나 피터 아네트처럼 TV에 잘 맞는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스타로 만들어주었다.

이 새로운 장르는 가히 미디어톤(미디어와 마라톤의 합성어)이라고 불릴 만하다. TV의 멜로 드라마, 선정적인 신문들의 과장된 어조, 떠들썩한 보도 등이 한데 합쳐진 이런 식의 뉴스보도는 걸프전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O J 심슨 사건,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 존 케네디 2세의 실종과 죽음, 컬럼바인 고교에서의 총기난사사건, 백악관의 스캔들 등에 대한 보도가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이 중에서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던 것은 바로 백악관의 스캔들이었다.

이처럼 정보와 오락이 합쳐진 새로운 형태의 뉴스 보도는 전통적으로 뉴스보도를 지배해왔던 주제들까지도 가려버리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올해의 대통령 선거전은 40년만에 가장 치열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하루종일 TV의 방송시간을 점령할 수 있을 만큼 전국민의 관심을 사로잡지는 못하고 있다.

미디어톤은 단순히 방송을 본 사람들이 다음날 직장에서 가벼운 잡담의 소재로 삼는 그런 프로그램이 아니다. 미디어톤은 전 국민이 보도내용 속에 흠뻑 빠져들도록 제작되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에 다른 사람들처럼 열중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이 왜 그 프로그램에 관심이 없는지 변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미국의 언론은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을 당했을 때부터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하루종일 뉴스속보를 내보내며 떠들썩한 보도를 계속해왔다. 그러나 미디어톤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것은 역시 걸프전에 관한 보도프로그램들이었다.

전에는 뉴스가 아날로그 시대의 기술에 의해 제한을 받았다면, 걸프전 보도는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 계속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전자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 같은 것이었다. 게다가 여기에는 할리우드 대작영화와 같은 굵직한 등장인물들도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중요인물뿐만 아니라 엑스트라에게도 돈을 지급해야 하는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르다. CNN의 걸프전 보도에 출연한 장군들, 학자들, 관리들은 TV를 통해 명성을 얻는 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대본도 없이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히 연기하면서 새로운 정보가 없어서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는 이야기에 인공호흡을 하듯 이것저것 살을 덧붙이면서 몇 시간 동안이고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시청자들은 이런 보도프로그램을 보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덕분에 걸프전 보도프로그램은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그 때까지만 해도 힘겹게 운영되고 있던 CNN을 제 궤도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처럼 현실을 바탕으로 씌어진 언론의 서사시에 게걸스럽게 열중하는 것과 어느 날 갑자기 이 서사시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필자는 모니카 르윈스키와 O J 심슨을 만나 자신들을 둘러싼 보도에 대한 감정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르윈스키는 언론에서 만들어낸 이미지와 거의 닮은 점이 없었다. 르윈스키는 언론이 과거의 정치적인 섹스 스캔들 주인공들과 정확히 일치하는 사람으로 그녀를 그려내기 위해 그녀에 관해 때로 부정확한 사실들을 보도했으며, 심지어 노골적인 거짓말까지 서슴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언론이 그녀를 ‘머리 나쁜 매춘부’쯤으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르윈스키는 사건이 터지고 나서 옛날에 알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배신을 당하는 경험을 했다.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녀의 옛날 학교 친구들이나 이웃들도 그녀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팔기 위해 언론과 접촉을 하곤 했다. 또한 르윈스키의 집 앞에는 하루 종일 기자들과 파파라치들이 진을 치고 그녀가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필자는 르윈스키가 필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혹시나 또 이야기가 잘못 전달될까봐 자꾸만 제동을 거는 것을 보면서 뭔가 그녀를 안심시키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결국 해줄 말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르윈스키는 포위를 당한 도시에서 간신히 목숨만 건져 도망친 생존자처럼 보였다.

O J 심슨은 르윈스키와는 달리 성인이 된 후 항상 언론의 주목을 받는 위치에 서 있었다. 그가 맡은 역할은 한때는 건장한 미식축구 선수였고, 그 다음에는 할리우드의 배우였으며, 마지막에는 살인용의자였다. 그러나 심슨 역시 언론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것은 르윈스키와 마찬가지였다. 그는 “사실이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언론은 그 사실을 모호하게 얼버무린다”고 말했다. 또 “그들은 자신들의 보도가 옳은 것인지 아무에게도 확인하지 않으며, 누군가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고 전화를 해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래야 자신들이 만든 그럴싸한 이야기를 며칠 더 끌고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성토했다.

▽필자〓프랭크 리치(NYT 컬럼니스트 및 매거진 수석 기자)

(http://www.nytimes.com/library/magazine/home/20001029mag―scandal.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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