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성인/대입제도, 완전한 대학 자율로

  • 입력 2000년 10월 22일 18시 31분


각 대학이 수시입학 합격자를 발표함과 동시에 2001학년도 대입의 막이 올랐다. 여러 대학에 복수합격이 가능한 수시입학 전형을 치르고 나니 또 뒷말이 무성하다. 제도 자체의 결함이 곳곳에서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경쟁률이 너무 높다는 점이다. 한 수험생이 여러 대학에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고교에서는 재학생의 절반이 특정 대학에 지원하는 기현상도 나타났다. 따라서 많은 학생이 첫 입시에서부터 고배를 마셨고, 마음의 상처도 컸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여러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의 선택에 따라 연쇄 대이동이 일어나 희비가 엇갈리고, 해마다 커다란 혼란을 겪는다.

수시모집의 고교장 추천 전형에서 필자의 대학은 영어와 수학을 곁들인 지필고사를 치렀다. 학교생활기록부와 수학능력시험은 신뢰성과 변별력에서 의미를 잃었고, 추천서나 면접도 시기상조인 현실에서 학력 측정은 불가피한 일이다. 이런 가운데 교육부는 2002학년도부터 지필고사에서 과거 본고사 형태의 영어와 수학 시험을 치르지 못하도록 입법 예고했다. 2002학년도 대부분의 전형에서 종전의 지필고사 형태를 계획했던 대학으로서는 난감한 일이다.

필자의 대학이 지난해부터 방문한 전국 100여개 고교에서는 한결같이 대입제도의 급격한 변화가 가져온 교육현장의 심각한 위기를 토로했다. 고교 교육이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학생들의 학력이 심각하게 낮아지고 있음을 입증하는 자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떤 국회의원은 ‘뭐든 하나만 잘 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입시개혁의 기본 방침을 질타했다. 규제개혁위원회도 교육부의 입법예고에 제동을 걸었다. 입시개혁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 첫째 이유는 과학적 검증 없이 단기간에 개혁을 단행하려는 데 있다. 아무리 이상적인 정책이라도 충분한 연구 검토 과정을 거쳐 사회의 공감을 얻어야 성공할 수 있다. 새로운 정책이 과연 고교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절감에 얼마나 기여했는가. 고교의 학력 수준이나 과외비는 쉽게 측정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기본적 노력을 찾기 어렵다.

둘째 이유는 모든 대학과 고교에 통일된 방침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려는 데 있다. 본고사 형태의 시험이 필요한 대학도 있고, 수능이 충분한 변별력을 갖는 대학도 있으며, 면접이나 추천서만으로 선발할 수 있는 대학도 있다. 고교간 학력과 학교생활기록부의 신뢰성도 천차만별이다. 대학이나 고교의 완전한 자율에 맡기는 경쟁원리의 이점을 살려야 한다.

교육부는 개혁방침에 따르지 않는 대학에 불이익을 준다고 한다. 실제로 교육부는 대학원을 육성하려는 ‘두뇌한국(BK) 21’의 재정지원에 아무런 관련도 없는 입시제도를 결부시키고 있다. 교육부의 개혁 기본 방침인 전형제도, 전형방법 및 전형기준의 다양화가 일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 것도 사실인 만큼 이제는 더 이상의 강요 없이 그동안의 개혁 노력을 겸손하게 재점검할 때다.

<김성인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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